<수필>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의 추억

얼마 전에 모처럼 오랜 기간 부부모임을 하는 네 가족이 함께 모여 1박 2일간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요즘은 부부모임을 해도 각자의 삶에 바쁘다 보니 온전히 부부 모임에 모두 함께 참여한 일이 흔치 않았지만, 이번 모임에는 모든 구성원이 100% 참여하여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나와 집사람에게는 소중한 선물 같은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모임 구성원들이 여행지를 통영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와 모임 구성원들에게 통영은 남쪽 바닷가의 도시, 싱싱한 해산물과 예술의 향기가 넘치는 고장이며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과 깊은 인연을 지닌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내 집안의 방계 조상 할아버지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통영 제승당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어왔고 제 마음을 뜨겁게 했다. 그래서인지 통영이라는 이름은 내게 늘 각별한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아침 일찍 전주에서 승합차로 네 가족이 출발해서 통영에 도착하여 통영의 유명한 나전칠기를 전시한 시립 미술관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시간에 들른 중앙시장 횟집에서 먹었던 감칠맛 나는 싱싱한 회는 아직도 그 훌륭한 미각을 살리는 맛을 잊을 수 없다. 바닷바람에 실려 온 듯한 신선한 향, 입안 가득 퍼지는 통영 바다의 싱싱한 생선의 깊은 맛은 그 어떤 고급스러운 음식보다도 차진 맛으로 내 뇌리에 진하게 남아 있다.

중앙시장 골목에서 낡은 앞치마를 입고 싱싱한 횟감을 팔던 횟집 아주머니의 미소 짓던 아름답고 친절한 모습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동피랑 벽화마을이었다.

‘동쪽 비탈’을 뜻하는 동피랑 마을은 처음에는 개발을 위해 철거 위기에 놓인 달동네였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협업으로 진행한 벽화마을 변화 프로젝트로 인해 오늘날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거듭나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속절없이 무너져 가던 판자촌 마을이 예술을 입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자체로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한때 가난과 고단함의 상징이자 흔적이었던 동피랑의 다소 가파른 언덕의 골목길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웃음과 추억을 남기는 가장 소중한 통영의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곳에서 서울 관악구 봉천동 판자촌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주공업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 영등포 문래동 공업단지에 있던 대한광학 주식회사에 취업하여 잠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이모님이 사시던 봉천동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좁은 골목, 낡은 지붕, 그리고 그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내 청춘의 소중한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봉천동은 재개발로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동피랑 벽화마을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예술과 문화로 승화시키고 아름답게 지켜내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정겹고, 더욱 값진 공간으로 느껴졌다.

동피랑 골목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파란 고래, 천사 날개, 바닷가 풍경을 담은 그림들은 아이들과 젊은 연인들에게 추억을 남기는 아름다운 포토 존이 되어 주고 있었다. 나에게는 주민들의 삶과 희망을 품은 또 다른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던 좁은 골목길이 이제는 작은 미술작품 전시장이 되어,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미소와 사색을 함께 안겨주는 명소가 되어 있었다.

조금은 높은 곳이기에 땀을 조금 흘리며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동포루 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은 조선시대 통영성의 동쪽 군사 요충지로,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역사적 장소다. 지금은 누각으로 복원되어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곳에 서 있으면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고단한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동포루에 오르면 탁 트인 통영항과 한려수도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파도 소리는 마치 수백 년 전 이순신 장군의 명령 소리를 대신 들려주는 듯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항구 위로 안개가 내려앉아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찼던 순간도, 그 풍광을 마주하는 순간이면 오히려 더없이 값진 수고였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동피랑 벽화마을 방문이 ‘통영 여행의 백미’라 부르는 것이리라.

통영 여행의 즐거움은 풍경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장에서 맛본 꿀빵의 달콤함, 아이들이 손에서 놓지 않던 와플 아이스크림 ‘와팡’의 시원한 맛은 이번 여행의 또 다른 행복이었다.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여정, 그야말로 오감이 충만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동피랑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골목골목마다 담긴 삶의 흔적을 보며, 이곳에서 살아온 이들의 고단한 일상과 그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낸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철거의 위기에 몰렸던 마을이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명소가 되었듯, 우리 인생 또한 어려움을 이겨낼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를 빛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통영은 단순한 먹거리 위주 목적의 관광지가 아니다. 예술과 삶이 공존하고, 역사가 현재와 살아 숨 쉬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미항의 특별한 항구도시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걷는 순간, 나는 선조들의 발자취와 함께 나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동시에 미래의 희망을 그려보게 되었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또 다시 통영을 찾고 싶다. 다시 동피랑 마을 언덕에 올라, 툭 터진 바다와 항구를 내려다보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다시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고 싶다.

산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더 바다를 그리워하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바다가 참 좋다.

아직 통영을 가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아름다운 항구도시 세계적 미항인 통영항에 꼭 한번 다녀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동피랑 벽화마을의 골목길을 걸으며 알록달록한 벽화와 푸른 바다를 함께 바라보는 순간, 당신은 분명 통영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될 것이다.

통영은 여행객에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마음에 오래 남는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도시’이자 ‘예술의 마을’이고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또다시 가고 싶은 곳, 그곳이 바로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을 비롯한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통영항이다.”

이만호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