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가 나자 마을회관 문이 열리고 박대우를 따르는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장님의 말이 틀림 말이 하나도 없는데, 아저씨는 왜 그러세요? 굿은 그만 둬야 한다고요!”

청년들이 입을 맞춘 듯 박규환을 닦달했다. 박규환이 짊어지고 있는 무구와 장구를 빼앗으려 했다. 박규환은 빼앗기지 않으려 버텼지만 힘 있는 청년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빼앗는 통에 버틸 수가 없었다. 

“어서 돌아가세요. 이건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이 자리에 있다가는 무구와 악기를 빼앗기는 것을 떠나 청년들에게 두들겨 맞지나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명희 아버지, 돌아가요…….”

박규환과 연기댁은 슬슬 뒷걸음질 쳐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박규환은 박대우와 청년들의 행동에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마당을 돌아다녔다. 

“집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건 아닐까요?”

연기댁이 겁먹은 눈을 싸리문 밖으로 보내며 말했다. 

“대우, 그 녀석도 좋은 일 한다고 그러고 있는데 집에까지 쫓아와서 행패를 부리겠어?”

박규환은 한숨을 내쉬다가 집을 나섰다. 연기댁이 어디를 가냐 묻자, 강병도에게 간다고 말했다. 연기댁도 같이 가자며 박규환을 따라나섰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박규환의 말을 들은 강병도는 자신이 망신을 당한 것처럼 주먹을 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마을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른들이 가만 안 있을 텐데.”

겉으로는 당골래를 천시하는 것 같지만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집안대소사에 필요할 때는 꼭 당골래를 찾았다. 당골래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한 존재였고, 그래서 들어내지 않았지만 보호의 대상이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걸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기도 그렇고 말이야. 후유…….”

“황전에서는 박대우가 하는 일들을 다들 박수치면서 응원하고 있는 것 같던데…….”

“지난번에 무슨 회의라고해서 나가서 들어봤더니 글쎄, 봉림 사람들을 막 욕하고 있더라고요.”

연기댁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눈들이 연기댁에게 모아졌다. 

“여기 봉림에는 면서기 하는 분도 있고 학교 선생님도 있고, 경찰, 군인도 있잖아요. 가진 자들이며 권력을 쥔 자들이고 일제에 복무한 친일세력이라 타도해야할 사람들이라고 열변을 토하더라고요.”

“다 친일 세력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박규환은 강병도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강병도 가족은 봉림 마을 사람이지만 친일을 한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마을과 마을이 너무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어. 여기 마을 사람들도 황전을 공산당 마을이라고 얕잡아보고 말이야.”

네 사람은 한동안 천장이 내려앉도록 긴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굿을 못하게 하면 우린 어쩌지요?”

“고창의 온 동네가 굿을 못하게 하는 건 아니지 않소. 황전만 못하는 거지.”

“양반도 상놈도,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권력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말하자면 다 같은 우리민족이고, 또 우리가 하는 굿은 모두를 아울러서 힘들 때 위로받고 위로해주는 행위 아니겠는가. 누구도 우리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없는데 말이지. 그런 것을 모르고 무조건 타파하려 들다니…….”

그때 밖에서 누군가 왔는지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동댁은 안방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강용대였다. 정읍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제 강점기 때 육군에 지원하여 함흥에서 근무하다가 해방 이전해 12월에 육군 오장으로 만기 제대한 뒤 재소집되어 평양사령부에서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딸이 둘이 있었다. 강병도와는 오촌 관계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