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천양정의 혼

천양정은 전주에 자리한, 매일 활시위 소리가 울리는 오래된 정자다. 300년을 넘는 역사를 지닌 전국적인 명사의 활터로, 국궁을 통해 체력과 정신을 수양해 온 전통의 장이다. 활은 구석기 시대 사냥 도구에서 출발해 한때 전쟁의 주 무기였으나, 16세기 총이 등장하며 역할이 줄었고, 19세기에 이르러 전쟁무기로서의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이들이 건강과 정신 수양을 위해 활쏘기를 즐긴다.

전주에는 기록이 남아 있는 활터가 셋 있었다. 1662년 창건된 군자정(君子亭), 1712년의 천양정(穿楊亭), 1766년의 읍양정(揖讓亭)이다. 그 밖에 내사정, 진북정, 육오정 등이 기록으로만 남아 있어 정확한 연대나 위치는 추정할 뿐이다. 내사정은 동국여지승람에 보이며 성안 남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진북정은 전주부사 기록과 일제강점기까지 존재했다는 증언이 있고, 전북대 평생교육원 서편의 일본인 북본송웅의 집에 ‘진북정’ 편액이 있어 그 일대를 터로 보기도 한다. 이름으로 보아 현재 진북동이나 인후천변의 풍광 좋은 곳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육오정은 1929년 관선천변에 지어, 50~60대 노인들이 모여 활을 쏘며 붙여진 이름이다. 풍남정은 기린봉 산록에서 시작해 조경단·서신동·인후동 등을 거쳐 동서학동 좁은목에서 2000년대까지 운영되다 문을 닫았다.

군자정은 용머리고개 아래 있었으나 1767년 서문 밖 큰 화재 때 소실되었다. 그 현판이 기령당 자리로 날아와 지신의 점지라 여겨 그곳에 재건했다. 1912년 육영학교 창시에 군자정·읍양정·천양정을 합병하면서 군자정은 폐지되었고, 재산은 지방 사립학교 경비로 기부되어 천양정으로 통합되었다.

읍양정은 1766년 곤지산 동쪽에 창건되었다. 1918년 삼정 합정 후에는 사립 함육학교, 사립 육영보통학교, 전주제2공립보통학교(완산초교 전신), 교육대학 부속학교 등으로 변천하며 오래도록 교육공간으로 쓰였다. 지금은 건물이 모두 헐려 사라졌다.

천양정은 1712년 숙종의 상무정책을 받들어 지금의 다가공원 아래 언덕에 처음 세워졌다. 9년 뒤 홍수로 유실되어 1722년 ‘다가정’으로 개명해 중건하였고, 1830년 다가정 구내 남쪽에 지어졌던 부속 건물이 현재의 천양정이다.

완산 8경 중 ‘다가사후(多佳射侯)’는 천양정에서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을 말한다. 과녁에 집중한 눈빛은 매섭고, 가슴을 펴고 어깨를 벌린 자세는 당당한 선비의 기개를 보여준다. 밀어내는 손은 태산을 밀 듯하고, 당기는 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는 듯하다. 이는 임전무퇴의 화랑정신과 다가산·전주천의 풍광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다.

전주 대사습은 영조 8년(1732) 전주에 대사습청을 설치해 무과 초시를 시행하던 전통을 되살려, 1974년 전통예술 부흥을 위해 부활했다. 이후 국악·농악·궁도대회를 매년 열어왔다.

국궁은 예의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등·퇴정 시 정간에서 인사를 하고, 사규를 철저히 지키며, 사대에서는 신·구사를 구분해 차례대로 발사한다. 음주나 흡연은 물론 단정한 복장 없이 사대에 오를 수 없다. 「논어」 팔일 편에서 공자는 “군자는 다투지 않으나, 다투더라도 활쏘기뿐”이라 하며 활쏘기의 예를 강조했다. 활을 쏘러 당에 오를 때도 읍하고, 이긴 이가 진 이에게 다시 읍하며, 이긴 자는 아래에서, 진 자는 당 위에서 술을 마셨다. 군자는 이기고 지는 데 쓸데없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활쏘기 예법에 비유된 것이다.

천양정은 기록상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활터 중 하나로 자랑스러운 역사와 유서를 지닌다. 궁중 활터였던 서울의 황학정은 규모나 보존 면에서 뛰어나지만, 황학정을 제외하면 천양정은 일등 사정이라 할 만한 자부심을 지닌다.

활은 무예라는 점에서 칼이나 창과 같으나 그 바탕은 다르다. 칼과 창이 용기와 힘을 바탕으로 한다면, 활은 정신 집중 위에 기술이 더해지고 힘은 부수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천양정은 정신을 닦는 도장이자 체력을 기르는 운동장이고, 예를 숭상하는 학교이며, 전통을 지키는 문지기다. 이것이 바로 천양정의 혼이다.

최용호 / 수필가

**최용호 수필가는 2024년 월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전북수비, 전주꽃밭정이수필문학회, 전주패성한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전주꽃밭정이수필문학회 회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