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능구렁이다. 스리슬쩍 비켜나가고 있었다. 

“자네가 만났던 그 시각 이후, 그 자리에서 박창수는 주검으로 발견되었어.”

“뭐라고요! 그럼, 차안에서요!”

붉은여우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동식의 표정과 몸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자네가 죽였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야. 어때? 자네 거처를 보여줄 수 있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동식은 시목동 계곡 박창수의 차안에서 대화를 나눈 뒤 차 밖으로 나와 차문을 닫고 그대로 동식의 아우디로 와서 차를 끌고 그 장소를 떠나버렸다. 그것 말고 다른 행동은 없었다. 동식은 꿀릴 게 없다.

“좋습니다.”

동식은 경찰차에 탔고 차는 경찰서를 빠져 나와 동식의 거처인 모텔로 향했다. 

“어떻게 죽은 거죠?”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박창수가 차안에서 죽었다고 했다. 왜 차안에서 죽었을까. 어떻게 죽은 것일까.

 

“보안상 말해줄 수 없어, 지금은.”

 

붉은여우는 딱 자르듯 말했다. 뭘 숨길 게 있어 보안상 말해줄 수 없다는 건가. 말을 안 해준다니 어쩔 수 없다. 걸릴 게 없긴 하지만 덤터기를 쓸 수 있다. 

경찰은 동식의 거처와 동식의 아우디를 수색했지만 건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야구방망이라도 하나 트렁크에 싣고 다닐 테지만 지금은 연장을 쓸 나이가 지난 터라 말끔했다. 

붉은여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했지만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일단은 자네를 풀어줄 거야. 하지만 우리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 고창 말고 다른 데로 움직일 때는 연락을 줘야 해. 물론 출국금지는 시켜놓을 거야.”

붉은여우는 정나미 떨어지는 말을 동식과 함께 모텔에 툭 던져놓고 떠났다. 

경찰들이 떠난 빈 공간은 일시에 의문부호로 가득 채워졌다. 밝은 대낮에 날벼락을 맞는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말하는 건가. 박창수가 죽다니 믿기지 않았다. 

누가 무슨 이유로 그를 죽였을까. 게다가 동식이 박창수를 만났던 그 장소 그 차안에서 죽었단다. 꼼짝없이 동식이 살인범으로 몰리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날 어둠이 몰려오던 그 시각 그 장소에는 동식과 박창수 이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동식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동식이 그 자리를 떠난 사이에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다. 박창수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그날 박창수와 대화를 나눴지만 악수도 하지 않았다. 박창수 몸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리한 게 뭐가 있을까. 

봉투! 돈이 들어 있던 봉투. 오천만원이 들어 있던 봉투. 그걸 붉은여우에게 말해줘야 할까. 만약 그 봉투가 없어졌다면 오히려 더 나를 의심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박창수가 제의했던 일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0억 원은 건달 강동식에게도 큰돈이다. 군침이 도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말고 딱 눈감고 박창수의 제안을 들어줬다면…….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박창수의 청부는 원래 동식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박창수를 만났을 때 오천만원이라도 받아올 걸……. 아니다. 돈을 받아오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그럼, 잘한 일이지. 박창수가 죽었으니 오히려 차라리 잘 된 일일까.

동식은 청룡건설로 전화를 넣으려다가 오정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형님, 죄송합니다만, 청룡 건은 일을 못할 것 같습니다요.”

‘뭐야! 이 자식이. 너 대체 왜 그래? 너 많이 변했구나. 무슨 일 있어?’

오정태는 콩 튀듯 입에서 따발총을 발사해댔다. 귀가 따가웠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