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건지기굿을 제대로 하려면 당골래가 적어도 대여섯은 되어야 하고 악사들도 구색을 갖춘 삼현육각이 동원되어야 하지만 처녀 총각의 부모의 재정상태가 그리 넉넉하지 못했으므로 굿의 주요 절차만 연행하기로 하였다.
신동댁과 연기댁이 번가라가면서 굿을 주관하였다. 먼저 총각의 넋을 호수에서 건지는 굿을 시작했는데, 총각의 집에서 조왕신 등에게 망자가 돌아오면 잘 위로해달라는 가택굿을 간단히 진행한 다음 저수지로 자리를 옮겼다.
집에서 가져간 그릇에 총각의 인적사항을 적은 한지와 총각의 속옷 상의를 넣어 새끼줄로 묶은 다음 줄로 신대와 연결한 뒤 그릇을 총각이 빠진 방죽으로 던졌다. 총각집에서 가져간 수탉도 함께 물로 던졌다.
신동댁은 용왕님에게 총각의 혼을 잘 건질 수 있도록 구원하였고 장자풀이의 일부를 애절하게 읊었다. 강병도와 박규환은 신동댁의 애절한 무가에 박자를 맞춰주며 답하고 장구와 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방죽에서 총각의 넋을 건져 총각의 집으로 돌아와 씻김굿을 진행하였고 이어서 처녀집에 가서도 씻김을 연행했다.
“남준이하고 명희는 집에 돌아갔다가 내일 오거라.”
씻김굿이 끝난 뒤에 박규환이 말했다. 오늘로 끝날 줄 알았던 굿이 내일까지 이어지는 통에 남준과 명희의 학교 문제도 있고 어린 동생들이 집에 있었기에 그게 걸렸기 때문이다.
남주와 경철 말고도 그 사이 남준과 명희는 동생이 둘이나 더 생겨 남주와 경철이 다른 동생 둘을 챙기는데 한계가 있었다.
남준과 명희는 왔던 길을 되잡아 걸었다. 명희가 자꾸 뒤로 물러서는 통에 남준은 걸음을 멈추고 명희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하고 같이 가는 게 싫어?”
남준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명희는 걸어오면서 힐끔 남준을 쳐다봤다.
“누가 싫데?”
“그럼 왜 뒤로 처지는 거야?”
“몰라! 얼른 가.”
명희는 남준의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남준은 재미있는 듯 실실 웃었다.
두 사람이 막 신작로로 진입했을 때 갑자기 먹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오더니 두 사람이 서 있는 곳만 온통 컴컴해졌다.
“저쪽은 구름이 없는데, 여기만 소나기가 내리려나 봐.”
명희는 걱정 실린 눈으로 하늘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더 빨리했다. 신작로를 버리고 산속 길로 접어들자 비가 쏟아졌다.
“명희야, 내 손 잡아.”
남준은 명희의 손을 잡고 뛰었다. 비는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두 사람은 금세 옷이 다 젖고 말았다.
“어디 피할 데 없을까?”
두 사람은 비 피할 곳을 찾았으나 산속 길에서 당장 비를 피할 곳은 없었다. 남준의 눈에 초가로 지붕을 이은 작은 초막이 보였다.
“저기 움막이 보인다.”
두 사람은 살필 것 없이 곧바로 초막으로 뛰어갔다.
초막은 상여집이었다. 상여를 옮길 때 쓰는 기다란 막대가 가지런히 선반에 올려 있고 만장 깃발과 상여를 꾸미던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단 기구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 있기에 상여집은 너무 좁았다. 어쩔 수 없이 남준과 명희는 몸을 밀착할 수밖에 없었다.
남준도 명희도 이미 비에 홀딱 젖어버려 저고리와 치마, 바지가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명희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상여집 안을 두리번거렸는데 눈에 겁이 실려 있었다.
“무서워?”
“무섭긴…….”
“앞으로 당골을 할 사람이 이런 걸 무서워하면 안 되지.”
“누가 무섭대?”
명희는 새침한 눈으로 남준을 쳐다봤지만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고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추워?”
“그, 그러게…….”
남준은 냉큼 명희를 안았다. 명희는 남준에게서 몸을 빼려다가 가만히 있었다. 남준은 팔을 더 크게 벌려 명희를 품에 꼭 안았다.
“안 춥지?”
명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슬으슬하던 건 조금 가셨는데 가슴 안에서 염통이 난리였다.
콩당콩당으로 시작해 쿵덩쿵덩으로 발전하더니 쿵쾅쿵쾅으로 금세 수위를 높였다. 온몸의 세포가 뻣뻣하게 경직되었고 남준과 닿은 몸으로 온통 피가 몰려 뭐에 취한 듯 얼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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