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생 때와 달리 명희는 하교할 때 집으로 가는 같은 방향의 여자아이들과 같이 움직였는데, 남준을 만날까 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만나서 같이 가고 싶은 마음과 또 만나면 가슴 안에서 피어나는 박하향의 낯선 부끄러움이 서로 충돌하면서 가슴 안에서 굿을 뛸 때 느끼는 야릇한 흥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준은 명희를 볼 때나 생각할 때 가슴 한쪽에서 피어나는 박하향이 무엇이라는 걸 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명희에게 어떤 것이든 보여주거나 행동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마음이 더 솟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굿패와 무업에 뛰어드는 것으로 부모님과 묵계가 이뤄진 터였다. 물론 남준과 명희도 그걸 숙명으로 받아드리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굿패로서 갖춰야 할 악기연주와 연행에서 시행하는 춤사위 등을 배우는데 더 열중했고 명희 또한 어머니 연기댁으로부터 무당으로서 지녀야 할 예능을 학습하는데 충실했다.
그런고로 두 사람은 학교가 아닌 굿판에서 자주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명희가 일부러 남준을 피하느라 그랬지만 굿판은 서로 협업을 해야 하는 처지라 지근거리에서 서로의 향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남준과 명희가 굿판에서 역할을 맡아 연행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심부름이나 기타 부수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으로 둘은 손발을 맞춰야 하는 일도 많았다.
무구인 방울이나 신칼, 혹은 악기인 장구나 징을 옮겨줄 때 간혹 서로의 손이 겹칠 때가 있었는데, 명희의 손이 남준의 손에 닿았을 때는 뜨거운 뭔가에 대인 듯 명희는 화들짝 놀라곤 했는데, 그 놀라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애쓰다보니 목 언저리 어딘가에서 식은땀이 배어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여름 어느 날, 신동댁은 남준에게 무구와 장구, 북을 챙기게 했다. 연기댁네와 함께 혼인굿을 하러 간다고 했다.
혼인굿은 세상을 버린 미혼 남녀를 양가의 합의하에 영혼결혼식을 올려주는 망자들의 혼인굿인 것이다. 남준은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망자혼인굿을 보는 건 처음이라 기대가 되었다.
굿을 하는 장소는 월림에서 십여 리 떨어진 구암리와 용대리 중간 쯤에 위치한 구암저수지였다.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남준네와 명희네는 봉림마을과 황전마을 중간 어귀에서 만나 산길과 신작로를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명희는 남준을 보자 고개를 옆으로 틀고 남준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남준도 괜히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얼른 옆에 서 있는 느티나무로 보냈다.
“명희야, 남준이랑 아는 체하지 않는 거야?”
신동댁이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담고 물었다. 연기댁도 빙그레 웃으며 남준과 명희를 번가라 쳐다봤다.
명희는 그렇지 않아도 얼굴에 홍조가 올라왔는데 그 말을 듣자 더 얼굴이 붉어져 잘 익은 홍시를 연상케 했다.
“허허허, 다 컸구나, 다 컸어.”
박규환이 웃음을 날리며 허공을 향해 말했고. 강병도도 따라 웃었고 연기댁도 명희와 남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구나 악기는 가져가도 결혼식에 쓰일 물건들은 혼인식의 양가부모가 마련하도록 미리 통기를 해놓은 상태였다. 남준은 장구와 꽹과리, 무구를 싼 보자기를 짊어졌다.
“남준이가 사내 한 몫은 하는구나.”
박규환이 남준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몰라요. 호호호.”
어른들이 먼저 앞서가고 그 뒤를 명희와 남준이 따라가게 되었다.
“너도 혼인굿은 처음 보는 거지?”
말없이 걷는 게 지루해서 남준은 앞서가는 명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명희는 대답하지 않고 웃음기 어린 얼굴로 슬쩍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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