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 남준과 명희는 무장초급중학교에 입학했다.
정초가 되자 명희 어머니 연기댁이나 남준 어머니 신동댁은 다른 때보다 더 바빠졌다. 물론 아버지 강병도나 박규환도 덩달아 바삐 움직였다.
안 사람들이 굿을 하러 갈 때는 바깥양반들도 전문 악사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물론 따로 굿패로 각 마을의 큰 행사에 참여하였다.
정초가 되면 굿패나 당골은 대목을 맞이하는 것이다. 신동댁과 연기댁은 각기 근동의 일곱에서 열 개의 마을을 당골판으로 갖고 있었는데, 각 마을의 전속 무당인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집안의 액막이나 재수굿을 할 때는 어김없이 전속 무당인 신동댁이나 연기댁을 찾았다. 때로는 신수를 물어보거나 태어난 아이들을 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당의 자식으로 이름을 올려 액막이로 한동안 당골의 보호 아래 있게 하였다.
경기지방을 기점으로 위쪽 지방은 강신무라 하여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는 반면 아래쪽 지방은 대개 선대로부터 이어받아 당골이 되는 경우가 흔했는데, 신동댁과 연기댁도 어머니로부터 무업을 이어받은 것이다.
고창의 당골들은 대개 이런저런 혈연으로 얽혀 있었고, 아내가 당골이면 남편은 대부분 악사를 하거나 굿패로 활동하였다. 물론 남자가 당골인 경우도 많았다. 자식들에게 무업이나 악기 다루는 법이 세습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무업에 쓰는 경이나 춤 등을 익혔고 악기 또한 다루게 되는 것이다.
남준 어머니 신동댁을 비롯하여 고창 지역 다른 당골은 대개 신당에 단군성조 상을 걸어놓고 정안수와 촛불을 켜놓는데, 명희 어머니 연기댁은 단군성조 상 대신 옥황상제 상을 걸어놓았다.
연기댁의 고향인 부안면 용산리 연기마을에 살면서 무업을 이어가고 있는 연기댁의 어머니 입암댁이 보천교의 교인으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보천교의 교리와 상을 신당으로 흡수하였기 때문이다.
신동댁과 연기댁은 새벽닭이 울기 전 일어나 정갈하게 머리를 빗어 쪽을 진 뒤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단정하게 입고 정안수를 신단에 올리고 향불을 켠 뒤 단군성조와 옥황상제께 기도를 올렸다.
남준과 명희가 중학생이 되면서 둘은 더 성숙해졌다.
당골이 되는 데 확신을 갖지 못했던 명희도 차츰 어머니 연기댁의 당골을 이어받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마음을 다해 춤과 독경에 쓰는 무경을 배우는데 더 열심이었고 육십갑자로 사주풀이 하는 방법을 배우는데도 진력했다.
주로 굿을 할 때 신을 부르는 청배(廳排), 신이 인간을 꾸짖거나 복을 약속하는 공수, 사람들이 신에게 소원을 비는 축원, 인간과 신이 함께 즐겁게 화합하는 오신(娛神)을 할 때 부르는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 등 무가 또한 목 트임을 위해 노력했다.
다만, 남준도 그렇고 명희도 그렇지만 서로가 불편해졌다.
국민학생 때와는 달리 어쩐지 서로를 보면 가슴 한쪽이 박하 잎에서 나는 향 같은 냄새가 어렸는데, 그 향은 낯선 냄새여서 그걸 얼른 받아드리지 못하는 가슴은 괜히 쿵쾅거렸고, 그 쿵쾅거리는 게 또 어색해서 어릴 때처럼 가볍게 다가가 아는 체를 하거나 편하게 말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남준보다는 명희는 그걸 더 못 견뎌 했는데 학교에서는 아예 남준을 외면했고, 예전처럼 봉림마을 남준의 집으로 일부러 놀러 가는 일도 없고, 굿판에서 만나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간혹 학교에서 국민학교 동창이 ‘너 원래 남준이랑 친하지 않았니?’ 라고 물어보면 얼굴을 얼른 돌렸는데, 저도 모르게 안면에 홍조가 어리곤 해서 괜히 마음속 어딘가를 아이들에게 들킬까 봐 일부러 남준이 보일 것 같으면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좋아하는 마음이었고 더 나아가 사모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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