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은 하나로마트에 들러 선물용 복분자주와 팩으로 포장된 양념장어구이를 산 뒤 아우디를 몰아 중노인이 알려준 월림 봉림마을로 달려갔다.

들녘은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는데 요즘은 대부분 콤바인으로 모든 작업이 이뤄지는 터라 사람은 별로 없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했는데 시절이 변해도 참새는 여전한지 콤바인 지나간 자리에 우르르 몰려 날아와 앉아서 바쁘게 서로를 격려하며 배를 채우고 있었다.

봉림마을 회관을 찾았으나 사람이 없어 평상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남자에게 강정근의 집을 물었다. 강정근의 집은 회관에서 좁은 소로를 따라 더 안으로 들어가면 하늘색 지붕에 파란 대문 집이라고 했다.

동식은 차를 회관 앞에 세워두고 어두운 길을 걸어 강정근의 집을 찾아갔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현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어서 오쇼이.”

막 샤워를 하고 나오는 참인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현관문을 열고 나온 강정근이 동식을 맞이했다. 동식은 들고 온 복분자주와 장어구이를 현관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했다.

“뭘 이런 것을 다 사 왔으까이. 그냥 와도 되는디. 내 그렇지 않아도 그때 얘기를 다 못허고 헤어져서 좀 섭섭혔는디 이렇게 찾아오니 잘 되었소. 저녁 안 먹었지라?”

집에는 강정근과 그의 부인이 있었는데, 강정근이 미리 말을 해놓았는지 부인은 동식의 식사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평소 우리들 먹는 건디, 괜찮을랑가 모르겄소.”

묵은지 고등어조림, 두부조림, 가지무침, 오이무침, 시금치, 상추 겉절이 등 가정식 백반집에 온 것처럼 식탁에 풍성한 시골인심이 가득했다. 출소한 후로 처음 받아보는 가정집 밥상이었다.

살아오면서 가정집 밥을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이런 밥상 앞에 앉으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고 부자가 된 기분을 느꼈었다. 동식은 잠시 식탁을 바라봤다.

“왜, 찬이 없소? 먹을 게 없지?”
 
식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동식에게 강정근이 정이 실린 음성으로 물었다. 동식은 얼른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고 말을 했다. 이런 밥상을 준비해준 강정근과 그의 부인에게 무슨 말로 마음을 전해야 하는지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동식이 가져온 복분자주와 양념 장어구이도 같이 식탁에 올렸는데, 그나마 고마운 마음이 전해진 듯 하여 동식은 젓가락을 들 수 있었다.

“그날 처음 봤는디 남준이허고 너무 똑같아서 정말 놀랬당게, 허허허. 남준이가 돌아온 중 알았당게.”

강정근이 동식이 따라준 복분자주를 받으며 가볍게 말했다.

“갸허고 나허고 동창이었는디, 여그 같은 마을에 살았었지. 글고 먼 친척이었고.”

“그분도 혹시 장구나 그런 악기를 잘 치셨어요?”

호암마을의 강루이자 수녀는 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농악을 잘 했다고 했다. 그는 무장면이 고향이라고 했다.

“그럼, 아주 잘 혔지. 장구도 잘 쳤지. 그 친구가 잘 허는 건 피리였어. 아매 갸가 제대로 혔으면 새납을 아주 잘 불었을 거여.”

복분자주를 반주 삼아 동식은 모처럼 흡족한 기분으로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밥은 다 먹었지만 복분자주가 남았고, 좋은 안주인 양념 장어구이가 준비되어 있는 터라 식탁에서 바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분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갸가 무당집 아들이었어. 그래서 설움도 많았지.”

받은 잔을 천천히 비운 강정근은 잠시 허공으로 눈을 돌린 뒤 잔을 동식에게 건네 복분자주를 따라주며 강남준에게 관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