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은 숲길을 따라 올라가 저 앞에 보이는 승용차로 다가가 운전석 문을 두드렸다. 어둠 속에서 타인의 차 문 두드리는 일은 동식의 비즈니스에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뒷목이 뻣뻣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이 내려가고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목소리로 추정했던 인상 그대로다. 동식은 사내 말고 다른 자가 타고 있는지 눈동자를 굴러 빠르게 차 안을 살폈다. 박창수 혼자였다.
“타시오.”
동식은 주변을 둘러본 뒤 승용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미 어둠이 깔려 차안도 어두웠다. 박은 전화로 자신이 일흔의 나이라고 했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얼굴이 일흔의 나이를 먹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박은 동식이 차에 타자마자 가방에서 두툼한 대봉투를 꺼냈다.
“착수금이요.”
곧바로 대봉투를 동식에게 내밀었다. 동식은 일단 봉투를 받아 안을 살폈다. 오만 원권 지폐가 든 작은 봉투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오천이요.”
오천이면 착수금으로 적은 돈은 아니다. 비즈니스를 완성하면 십억을 준다고 했는데 허언이 아닌 모양이다.
강용대란 자가 십억을 걸 만큼 박에게는 원한이 깊다는 건가. 박의 행색을 봐서 십억은 박에게도 적은 돈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일단 보이는 외양으로 봐서는 그랬다. 그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입는 평상적인 가을 점퍼에 흔한 바지를 입고 있고 머리는 대머리였다.
외모나 옷차림으로 그 사람이 갖고 있을 재산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절약이 몸에 밴 사람들이 있으니까.
박이 십 억 쯤은 복수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재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외모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의 외모는 산전수전 다 겪은 말하자면 세상을 만만하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용대라는 사람은 나이가 많던데, 왜 굳이 죽이려 하쇼?”
동식은 시선을 앞으로 향한 채 말을 뱉었다.
박창수는 동식을 바라보던 눈을 거두고 시선을 차창 밖으로 보낸 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눈을 동식에게로 가져왔다.
“내가 준다는 돈이 적소?”
이유를 물어보는 게 실례는 아닐 텐데, 왜 이유는 말하지 않고 말을 돌리는 걸까.
“사람을 죽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시잖아요.”
박은 다시 눈을 차 밖으로 돌렸다.
“왜 죽이려고 하는 건지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니요?”
동식의 목소리가 차창에 부딪쳐 튕겨져 나갔다.
박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하면서 걸고넘어지려는 의도를 미리 생각한 것은 아니다. 박이 말을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동식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 부피를 키웠던 것인데 동식은 애써 외면해 왔다. 그게 동식도 모르게 박을 보자 터져 나온 것이다.
“이유는 묻지 마시오.”
“왜 묻지 말라는 거죠?”
동식의 음성은 더 톤을 높였다.
살인범과 살인교사범은 공범이다. 형량도 같다. 교도소에서 배운 지식이다. 박창수가 살인을 교사했다면 강동식과 공범인 것이다.
범죄를 공모한다면 적어도 왜 죽여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동식은 칼이나 망치, 몽둥이 같은 사람을 죽이는데 쓰이는 연장이 아니다.
“그냥 해줄 수 없소?”
박의 목소리도 차창 밖으로 뛰어 넘어가고 있었다.
동식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동식을 칼이나 망치로 여길 뿐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박이 동식에게 넘겨준 대봉투에 오천만원이 들어 있다. 일이 완성되면 십억을 채워서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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