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 면에서도 동식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농악전수관의 이명주와 호암마을의 강 루이자 수녀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모습으로 동식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면과 외면은 동식을 어느 방향으론가 몰아가고 있었다. 동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향으로. 동식은 그런 자신이 낯선 것이다. 그래서 실실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도 좀 도와주실래요?”

철거작업을 하고 있는데 루이자 수녀가 동식을 불렀다. 

“병원에 가실 분이 있어요?”

“아니요. 오늘은 영감님이 한분 계시는데 목욕을 좀 해드려야 하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게요. 여자 노인 같으면 우리가 씻기는데…….”

루이자는 동식을 마을로 데려갔다. 수녀에게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왜 나에게만 도와달라 말을 하는 거냐고 물어야 했지만 동식은 묻지 않았고 불만도 없었다. 오히려 수녀가 동식에게 무슨 일인가를 시켜줬으면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살다 살다 별짓을 다 해보게 된다. 건달이 다른 사람 몸뚱이를 씻겨주다니. 

슬레이트 지붕이 곧 무너질 것처럼 허름한 집에 깡마른 노인이 누워 있었다. 병색이 완연했고 거동조차 힘들어 보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색했고 서툴렀지만 동식은 성의껏 노인을 목욕탕으로 옮겨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씻겨줬다. 바디 워시를 묻힌 타월로 몸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문지른 뒤 따뜻한 물로 씻어냈다. 

동식도 아예 팬티만 입었는데 어깨와 팔뚝에 도드라진 문신이 노인의 눈에 거슬렸는지 노인은 자꾸 동식의 몸 여기저기를 슬쩍슬쩍 살폈다. 도저히 물어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는지, 노인은 동식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깡…… 패여?”  

예, 나 깡패 맞아요. 왜요? 뭐, 불만 있어요? 

그동안 사람들이 물어보면 당연히 이렇게 말해왔다. 불만 있으면 한 대 맞을 거야? 한 대 맞으면 불만이 없어질 거야, 하면서 말이다.

“아, 아니에요. 이 문신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그냥 재미 삼아 한 거예요. 헤헤헤.”

그러나 노인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원래 노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동식의 문신 때문에 굳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동식은 문신 때문이라 생각했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노인을 다 씻기고 나자 루이자가 환하게 웃으며 수고했다고 말해, 편치 않아 굳었던 마음이 그나마 보슬보슬해졌다. 

성당에 가서 점심을 먹은 후 작업장으로 가는데 이번엔 루이자 수녀가 아니라 다른 수녀가 동식을 불렀다. 

“운전좀 해주실래요?”

루이자 수녀가 운전하던 그 승합차를 운전해달라는 것인가. 루이자는 자동차 키를 동식에게 맡기지 않았었는데. 

“루이자 수녀님이 무릎이 너무 안 좋으셔서 그래요. 내가 해야 하는데 일이 있고 그래서. 루이자 수녀님도 병원에 가야 하니까 아래 마을 노인분하고 같이 좀 겸사겸사해서.”

그렇지 않아도 아까 아침에 루이자 수녀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이곳에서 40년을 넘게 봉사를 하면서 살았다 하니 무릎인들 멀쩡하겠는가. 

동식은 흔쾌히 승낙했다. 폐건물 자재를 나르는 것보다는 운전하는 게 낫긴 낫지. 

“무릎이 많이 안 좋으세요?”

승합차 조수석에 루이자 수녀는 힘겹게 몸을 실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루이자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오전에도 도와줬는데, 운전까지 해줘서 감사해요.”

루이자의 칭찬을 들으니 동식은 몸이 간지러워졌다. 루이자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 집에서 노인을 부축해서 차에 태운 뒤 고창병원으로 운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