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깡패와 굿패 1부 '깡패와 장구'(22)

루이자가 동식을 보며 또 미소를 지었다. 봐라, 이런 차를 네가 운전할 수 있겠니? 하는 표정으로.

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차를 운전해서 다녔을까. 루이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궁금증이 한층 부피를 키웠다.

봉고차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 허름한 집 앞에 정차했다. 루이자는 스스럼없이 대문을 밀고 들어가 어르신을 부르며 현관 미닫이문을 열었고 마루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병약해 보이는 노인이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루이자가 동식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동식은 뛰어 들어가 몸을 일으키려는 노인을 부축했다.

루이자는 노인에게 병원에 가는 날이라고 말했고,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함인지 고마움인지를 담은 미소를 수녀에게 보냈다. 동식은 노인을 안아들고 밖으로 나와 봉고차에 태웠다.

“우리 겉은 사람은 수녀님 없으면 못 산당게. 얼매나 고마운 중 몰라. 이렇게 병원도 데려다 주고 말이여. 우리 마을 천사여, 천사.”

“같은 가족이잖아요. 가족.”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동식은 저도 모르게 다리가 가지런히 모아졌다.

오늘은 봉사활동을 쉬는 날이다. 석정온천으로 사우나를 갔다. 안 하던 노동일을 이틀 했더니 온몸이 노곤했다.

건달은 덩치가 생명이다. 덩치가 좋지 않으면 깡패 생활도 종을 쳐야 한다. 교도소에서도 꾸준히 운동을 했다. 물론 많이 먹기도 했다.

건달 선배나 후배들은 정기적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같은 식구 건달을 면회 온다. 면회 온 선배들은 수감 생활을 하는 후배들에게 꼭 빠지지 않고 당부하는 말이 있다.

‘살좀 쩌라.’

운동 열심히 해서 근육을 키우라는 게 아니라 왕창 먹어서 살을 찌워 몸 부피를 키우라는 말이다. 건달이 싸움을 잘 하려면 근육을 키워 상대방을 제압할 힘을 키워야지 왜 몸을 뚱뚱한 돼지로 만들라는 걸까.

건달에게 필요한 무기는 싸움을 잘 하는 전투용 근육과 싸움 스킬이 아니다. 거대한 돼지비계 덩어리로 상대를 압도하는 전시용 몸뚱이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건달이라고 살만 찌우는 건 아니다. 근육을 열심히 만드는 놈들도 많다. 동식도 근육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러나 운동으로 만든 근육과 실전 노동 근육은 전혀 다르다. 아무리 운동으로 다져진 팔과 다리 근육이라 해도 실전 노동에 투입되면 거의 무용지물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고 비틀고 꼬고 쌓고 움직이고 옆으로 놓고 뒤로 놓고 하는 실전 근육이 따로 있는 것이다.

온천에 몸을 푹 담그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명주가 떠올랐고 강 루이자 수녀가 생각났다. 이명주에게 약속했다. 느닷없이 던져버린 약속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청룡에 찾아가서 견해를 전해야 할 텐데 좀 막막하다. 오정태의 지시를 무시한다면 건달 생활에서는 치명적인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조직의 위계를 깨버리는 일이라 잘못하면 후배들에게까지 도태될 수 있다. 앞으로의 건달 생활에 아무래도 타격이 오지 않을까.

조직 생활을 접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당장 대책도 없이 그동안 다져온 건달 생활을 그만둔다는 건 쉽지 않다.

박창수는 아직 연락이 없다. 만나서 착수금을 준다고 했다. 착수금을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죽여야 할 것이다.

내심 박창수가 허언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 생각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두려운 건가. 하지만 이 더럽고 추접스런 양아치 생활을 접으려면 한번의 고비는 넘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