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자들 모두가 앞에 서서 인사를 하는데 객석에 있던 관객이 하나둘 꽃다발을 들고 나가 치배와 잡색들에게 건네줬다.
꽃다발을 가져와 이명주에게 건넸어야 했나 하는 뒤통수 어딘가가 간질간질한 어쭙잖은 생각이 들었고 동식은 얼굴이 벌게졌다.
공연을 보러 오라했던 말을 들었으니 꽃다발은 없지만 인사라도 건네야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범인의 생각마저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동식은 어색했다. 동식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런 동식을 무대에 서 있던 이명주가 먼저 알아봤다. 짧게 깎은 머리와 우람한 등치에 하얀 추리닝을 입고 팔자걸음으로 서 있는 남자가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었으니까.
‘오셨어요.’
동식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명주의 입모양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쑥스러워서 동식도 고개를 숙여 묵례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봉사활동 때문에 아침 일찍 호암마을로 아우디를 몰았다.
가는 도중 이명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공연 잘 봤냐는 인사말로 운을 떼었다. 말주변도 없고 건달로 살아오다보니 투박하고 거친 말만 써버릇해서 잘 봤다는 말 말고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공연 내내 어떤 울림 같은 걸 느끼면서 가슴에서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울컥 눈물을 쏟으려 했을 만큼 감동 깊었다. 그 감동을 동식은 조리 있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강동식 씨도 아시겠지만, 이번에 우리가 숙소동을 짓게 되었어요.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해서 군청의 도움을 받아 짓게 되었는데, 이 숙소동이 지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농악을 배울 수 있을 거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고창 농악을 알릴 수 있을 거예요.’
이명주의 설명을 들으면서 동식은 운전에 신경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부끄러웠다.
이명주는 동식이 숙소동 짓는 공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청룡에서 이미 다른 건설회사에 고창 건달 강동식이 도와주고 있으니 농악전수관 공사에 손을 떼라고 으름장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건설회사에서는 이걸 이명주에게 알렸을 것이고.
‘숙소동 공사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려요.’
공사에 참여하려는 다른 건설 회사들을 협박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일 것이다.
왜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죠? 이렇게 따져 되물어야 한다. 동식은 건달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하지 않고 동식에게 직접 인간적으로 부탁을 하는 이명주가 보통내기 여자가 아님을 동식은 느꼈다.
깡패인 동식을 처리하는 단순한 방법은 공권력을 이용하는 방법이 최상이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다. 이명주는 그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방식을 썼는데 어쨌든 이명주는 동식을 깡패로 대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해주고 있었다. 그만큼 이명주가 그릇이 큰 건가.
고창 농악을 책임지는 막중한 무게를 지탱할 정도의 힘을 지닌 여자다. 처음 대면에서 느꼈던 것처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그녀에게 존재함이 분명했다.
호암마을에서는 어제와 같은 일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동식은 오늘은 마음먹고 노동으로 땀을 흘려보려고 하얀 나이키 추리닝의 건달 복장이 아닌 허름한 작업복의 일꾼 복장으로 왔다.
보호관찰소 직원이 동식의 차림새를 보고는 어제보다 더 활짝 핀 얼굴로 동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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