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팔달로 옛날 미원탑 사거리에서 동문사거리 방향으로 경원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특이한 글씨체의 아름다운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홍지서림'이라 적힌 그 간판 뒤로는 6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전주 사람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문화의 성지이자, 변화하는 시대를 묵묵히 견뎌온 작은 기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1963년 천병로 사장이 문을 연 홍지서림은 대한민국 종합서점 중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성을 갖고 있는 서점으로 문인과 공부하는 학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마산의 '학문당' 다음으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한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가 몰아치며 많은 사업장들이 폐업하게 될 때, 홍지서림 역시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때 귀인 한 사람이 나타났다. 전북 출신 소설가 양귀자 작가였다. 1998년, 그는 망해가는 서점을 인수해서 인문학 위주의 번듯한 종합서점으로 키워냈다. 그의 결단 하나가 전주의 문화 명맥을 이어가게 된 셈이다. 현재는 양 작가의 조카인 양계영 사장이 3대째 경영을 이어받아 경원동 본점과 송천점, 효자점, 아중점 3곳의 분점을 운영하며 서점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점에 거의 손님이 없는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기자와 만난 강성수 판매부장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홍지서림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에요. 수 많은 전주시민들이 이곳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났거든요."

실제로 홍지서림은 전주 시민들의 삶과 함께 호흡해 왔다. 과거에는 서점 인근 건물 2층에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있어서, 사람들은 책을 사러 왔다가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 음악도 함께 즐겼었다. 방송통신대학 교재 판매처로도 활용되어, 꿈을 포기하지 않은 많은 시민들의 학습 동반자 역할을 했다.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그분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강 부장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 작지만 큰 기적, '책쿵' 정책의 힘

하지만 서점경영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형서점 체인과 온라인 쇼핑몰의 성장으로 지역 서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아 서점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같은 대기업들도 전주에 진출했다가 철수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요"

그럼에도 홍지서림이 살아남아 버틸 수 있었던 건 전주시의 혁신적인 정책 덕분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행된 '책쿵(Book-Koong)' 제도는 시민들이 지역 서점에서 책을 살 때 20%까지 할인해 주는 획기적인 지원책이다.

"인터넷보다 더 저렴하게 책을 살 수 있으니 시민들이 다시 저희를 찾아와 주세요. 문화누리카드, 에듀페이 같은 정부 지원정책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강 부장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스며든다.

서점 경영이 예전과 다르게 흑자 경영이 쉽지 않다. 아동 도서 판매가 예전 같지 않고, 전집류 구매도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지만, 강성수 부장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점 운영이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곳에서 책을 만난 독자들이 지식을 얻고, 전주가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어요."

그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울린다. "앞으로도 지역과 함께하는 서점으로 남고 싶습니다. 홍지서림이 있는 한, 전주의 문화는 계속 살아 숨 쉴 거예요."

62년을 견뎌온 작은 서점 하나가 만들어내는 기적. 그것은 바로 책과 사람, 그리고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야기다. 홍지서림은 오늘도 전주 시민들을 기다리며, 새로운 63년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홍지서림이 전주에 있는 한 전주시민들은 책 속에서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만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