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당장 달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썩은 목재와 쓰레기들을 나르려니 또 무안했다. 한량으로 시간이나 때우다 가라고 말없이 동식을 묵인해준 보호관찰관의 체면도 있는데.
안절부절 잠시 망설이던 동식은 뭐에 떠밀리듯 작업 현장으로 다가갔다.
백색 운동화가 진흙에 더럽혀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러진 썩은 목재를 두 팔로 안아들었다. 하얀색 추리닝이 썩은 목재 가루에 더렵혀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일을 하던 다른 사람들이 동식을 힐끔거렸지만 별 말은 없었다.
점심이 가까워올 무렵 서양수녀는 성당으로 올라갔는데 잠시 후 내려와 일꾼들에게 소리쳤다.
“자, 점심들 먹고 하세요! 육개장을 끓여놓았으니 다들 성당으로 올라가시게요!”
일꾼들은 어떻게 할지 서로 눈치들을 봤다.
“수녀님이 육개장을 준비하셨답니다. 식사들 하십시다.”
같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곤 하던 중년남자가 일꾼들에게 소리쳤다. 사람들은 실장갑을 벗어 털면서 중년남자를 따라 성당으로 올라갔다.
규모는 작았지만 성당 안에 식당이 있었고, 일꾼들은 의자에 앉았다. 식탁에는 이미 밑반찬들이 놓여 있었고 동네 아낙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일꾼 각자 앞에 밥과 육개장을 놓아주었다. 중년남자가 서양수녀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식사를 권했다.
다들 얼큰한 육개장에 밥을 말아 속이 뜨끈하고 든든하게 먹었다. 동식도 괜히 건달이랍시고 똥폼 잡지 않고 육개장의 얼큰한 국물에 밥을 말아서 배부르게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씩 들고 밖으로 나갔는데, 동식은 보호관찰관에게 다가갔다. 그가 아침보다는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동식을 쳐다봤다.
“잘 하시던데요, 허허허.”
건달이라고 일도 안하고 농땡이나 피울 거라 예상했는데 추측과 달리 그럭저럭 성실한 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리라. 겸연쩍은 동식은 그의 눈을 피했다.
“저 서양 수녀는 누구에요?”
“저도 잘 모르는데, 이 마을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인가 봐요. 이 동네에서 거의 40년을 살았다고 하지요, 아마.”
“40년이나요, 와! 어느 나라 사람인데요?”
“이태리인가 어디에선가 왔다고 하는데, 그 전에 이 동네가 동혜원이라 부르는 나환자촌이었는데, 그때 이 동네에 와서 엄청나게 봉사를 많이 하셨다고 그래요. 아까 보셨지만 일하는 거 보세요. 정말 존경스런 분이에요.”
“이름이?”
“강루이자 수녀님이라고 하더라고요.”
“강…… 루이자요?”
“예, 강은 우리나라 성씨 강을 붙인 거랍니다.”
“나하고 같은 강씨네…….”
오후 작업시간이 다 끝날 무렵, 동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오정태다. 동식은 이마를 찌푸렸다.
농악전수관 공사 때문에 전화했을 것이다. 전수관에서 이명주를 만난 뒤로 동식은 정태의 제안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동안 해왔던 비즈니스에 비하면 정태의 명령은 그야말로 껌이었다. 동식이 밥 먹고 하는 일이 웃통 까고 협박하는 일인데, 공사 하나 몰아주도록 위협하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가 틀림없다.
하지만, 덩 ~ 덩 ~ 쿵따 쿵, 덩 ~ 덩 ~ 쿵따 쿵. 전수관에서 들었던 휘모리장단 장구 연주와 이명주의 미소가 동식의 입과 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동식은 목장갑을 벗고 한쪽으로 가서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어떻게 되었냐?’
발을 빼겠다고 말하면 성질 급한 정태가 당장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조금 지켜보고 있습니다요.”
‘뭘 지켜봐, 지켜보길! 입찰 들어오는 놈들이 있다던데!’
“누가 그래요?”
‘누구는 누구냐? 청룡에서 그러지!’
“그래요?”
동식은 일부러 놀란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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