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깡패와 굿패 1부 '깡패와 장구'(13)

“동혜원요? 고창읍 신월리라고 하셨어요?”

마른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암마을 이름은 원래부텀 여그서 썼는디, 거그서도 호암마을이라고 부른다드만.”

마을로 들어오기 전 봤던 직사각형 바위가 궁금했다.

“여기 마을로 들어오다 보니까 커다란 바위가 있던데요. 그게 무슨 바위에요?”

“병바우라고 허지 병처럼 생겼다고 혀서 병바우라고 혀. 옛날에 신선들이 잔치를 허다가 술에 취해서 소반을 엎어버렸는디 소반 위에 놓여 있던 술병이 엎어져 버렸드랴. 그 엎어진 것이 병 같이 생겼다고 혀서 병바우라고 허지. 여그 마을 이름인 호암에서 호 자가 병 호라고 허드만. 병 호자에 바위 암자를 써서 호암마을이라고 그런디야.”

“아따, 여편네 많이도 아네, 허허허.”

뚱뚱한 노인이 싱거운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하셨던 신월리에 있는 호암마을은 왜 호암마을이라고 불러요?”

“아매, 그 호 자가 호랭이 호 자 일걸. 호랭이 바위가 마을 뒤에 있응게 호랭이 호 자를 써서 호암마을이라고 헌다고 그런 것 같은디.”

동식은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회관을 나와 차를 몰아 신월리 호암마을로 달려갔다. 고창읍에서 북서쪽으로 4킬로미터 부근에 있었는데 우측에 서해안고속도로 고인돌휴게소와 좌측에 운곡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었고 남서쪽으로는 고인돌유적지가 위치해 있었다.

동식은 차를 달려가면서도 고창 이 작은 동네에 여기저기 볼 곳이 많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고창에 살았지만 워낙 미친개 같은 인생을 살다보니 한가롭게 유람하고 다닐 시간이 없었다.

주로 고창읍내와 서울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비즈니스를 하느라 바빴고 서른다섯 해 반절은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낸 탓이다.

호암마을에 도착하자 굴삭기의 엔진 소리가 났고 주변에서 몇몇 사람들이 낡은 나무기둥 조각이나 쓰레기 같은 부속물들을 나르는 게 보였다. 낡은 집과 창고 같은 곳을 철거 중인 모양이다.

백색 나이키 추리닝에 같은 색의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은 동식의 복장은 철거작업 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작업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 아니겠는가. 봉사만 하면 된다. 옷과 신발에 흙을 묻힐 일이 없다.

동식은 차에서 내려 느릿느릿 팔자걸음으로 현장으로 다가갔다. 작업을 하던 자들이 힐끔힐끔 동식을 쳐다봤다. 옷차림에서 대번에 나는 조폭이요, 광고를 하는 터라 다들 웃음기 없는 무표정한 눈으로 동식을 쳐다봤지만 대놓고 아니꼬운 눈은 하지 않았다.

개중에 아니꼬운 눈을 한 이가 있었는데, 그는 잠시 동식을 똑바로 쳐다봤다. 동식은 그런 자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일종의 직업병인데 조직 선배들 말고는 절대 누구에게도 눈싸움에서 진 일이 없으니 눈에 쌍칼을 달고 쑤셔버릴 것처럼 노려보는 것은 동식의 습관이다.

그는 동식의 쌍칼 눈을 피했고 힘이 들어갔던 눈에서 얼른 파워를 풀며 다가왔다. 보호관찰소 직원인 모양이다.

“강동식…… 씨죠?”

어투에서 그가 동식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동식은 대답 없이 눈에서 힘을 풀고 그를 쳐다봤다.

그는 슬쩍 위아래로 동식의 복장을 살폈지만 옷차림을 품평하지는 않았다. 그도 동식이 고창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건달이라는 걸 알고 있고 여기까지 왕림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동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 분란을 일으키는 불상사만 일으키지 말고 그저 얌전히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뿐 땀 흘려가며 진짜로 막노동 봉사활동에 충실하게 임할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왔어도 역시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