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봐서는 어려 보였지만 정말 이 여자가 관장이라면 얼굴 어딘가에 숨겨 둔 나이가 보였을 법 했지만 역시 어려 보여 여자가 관장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동식은 힘이 빠졌다. 농악전수관 관장 정도라면 나이가 최소 사십 대 이상은 되고, 남자여야 한다. 농악 이미지처럼 세련되기보다는 농촌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털털한 막걸리 같은 인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동식과 급이 맞았다. 그래야 한판 붙을 만하다. 어깨 문신을 까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 슬쩍 반항 정도는 할 급이 되어야 한다. 한 라운드 정도의 스파링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게 뭔가. 입김만 불어도 훅 날아갈 여리디 여린 젊은 여자 아닌가.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할까요?”
여자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고 동식은 여자의 힘에 이끌려 따라 나갔다. 너무 허탈해서 맥이 다 빠졌다고 할까. 옆에 관장실이란 푯말이 붙은 작은 방이 있었다.
여자도 긴장했는지 의자에 앉자마자 차돌 같은 눈으로 동식을 똑바로 쳐다봤다.
“무슨 일로 오셨지요? 농악을…… 배우러 오셨나요?”
여자에게서 실려 오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 방에서 나는 향인지 모를 냄새가 동식의 코에 얹혔다. 묵향 같기도 하고 오랜 고택의 소류에 핀 수련에서 나는 향 같기도 했다.
어? 동식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낯이 익었다. 그리고 이곳이 농악전수관이라는 게 떠올랐다.
맞다. 여자는 동식이 법무부 밥을 먹을 때, 그곳에 와서 공연도 하고 강습 시간을 마련하여 사물놀이에 관심 있는 재소자들에게 장구를 가르쳤던 사람이었다.
“혹시……?”
동식의 얼굴은 협박을 하려던 모양새에서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묻은 평범한 삼십대 중반의 남자 얼굴로 바뀌었다.
여자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뭘 혹시라고 말하는 거냐는 의문을 눈에 달고 동식을 쳐다봤다.
“교도소에…… 공연…….”
“아…….”
여자가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여자 얼굴에서 전수관으로 오던 길에 봤던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올랐다. 반듯하고 고른 치아가 하얗게 들어났다. 동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챈 것이다.
“공연, 보셨어요?”
“그, 그렇지요.”
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예, 교도소에 있었어요.”
“아, 그리고 그때 장구 강습을 한 시간 했는데……, 그때 오셨던 분 아니세요?”
여자도 동식의 얼굴을 기억한 것인가. 동식은 전수관 입구에 피어 있던 배롱나무꽃처럼 더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이거 모양 빠지게 건달 꼴이 말씀이 아니다. 협박은커녕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송구스러워지는 걸까. 하기야 교도소 내력이 신문에 광고 낼 만큼 자랑스러운 건 아니니까.
“아, 맞다. 그때 장구를 꽤 치셨는데. 그렇지요?”
여자는 경계심을 탁 내려놓고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상체를 동식에게 더 바짝 기울이며 말했다.
“아, 예. 뭐…….”
임금님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신하처럼 황송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동식은 여자의 시선을 피하느라 자꾸 얼굴을 이리저리 돌렸다.
“저는 이명주라고 해요. 성함이?”
고창 바닥에서는 이 강동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나를 모르는 건가. 이런 때 인상을 한번 팍 써줘야 하는데.
.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