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짜리 공사를 나에게 맡기다니. 양아치나 할 짓을 내게 던져준 거였어? 정태가 나를 이 정도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건가? 심사가 꼬였다. 

청룡 사장과 통화를 종료한 뒤 정태 번호로 통화를 시도하려다 손가락을 멈췄다. 금액이 크면 클수록 위험도가 높다. 반대로 액수가 적으면 부담이 적다. 입찰 참여를 가로막아도 더럽다고 침이나 한번 뱉을 뿐 경찰에 신고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데까지 정태가 신경을 써서 맡긴 건 아니겠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굴욕감이 일었지만 그 굴욕을 누를 수 있을 만큼 꽹과리와 장구가 동식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고 할까. 

농악전수관은 고창읍에서 서남쪽으로 10여 킬로미터를 내려간 성송면 학천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수관 도로로 접어들자 우측으로 누렇게 익은 벼들을 배부르게 품은 논들이 아래로 쭉 잇대어 있고 좌측은 몇 그루의 소나무가 푸른 하늘을 이고 서 있었다. 도로변으로 소담스럽게 핀 코스모스가 바람결에 살랑거리며 하늘과 가벼운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전수관 입구 양측에는 배롱나무가 환영하듯 붉은 꽃들을 매달고 바람에 산들거리며 방문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예전 초등학교 자리라는데 나름 손을 봤는지 외관은 말끔하고 단정했다. 

차를 세우고 내리자 장구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북편의 저음과 채편의 고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지런한 질서를 만들어 가을 하늘을 공명하고 있었다. 

동식은 이곳에 온 목적을 잊고 잠시 멈춰서 소리를 은미하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동생 몇을 데려올 수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무게를 올릴 필요는 없었다. 상황을 봐서 눌려줘야 할 타임이 오면 그때 어깨 동생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서너 명이 자리에 앉아 사무를 보고 있었고 두세 명은 서서 뭔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선량하게 생긴 사무실 사람들은 동식을 보자 곧장 경계의 눈으로 변했다. 짧은 머리에 백색 나이키 추리닝으로 감싼 톤수가 나가 보이는 몸뚱이는 누가 봐도 건달임에 틀림없어 보였던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동식에게 향했고,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겁이 실린 굳은 얼굴을 하고 마지못한 듯 일어서 동식에게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동식은 건조한 목소리로 여기 관장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여자는 쳐다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쳐다보는 것처럼 뻣뻣한 목으로 서 있는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려 슬쩍 쳐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동식에게 원위치하고 무슨 일로 관장님을 찾느냐고 처음 질문보다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는데 누가 들어도 주눅이 확실히 든 음성이었다. 

“관장 있어! 없어!”

동식은 이마를 슬쩍 구기며 목소리에 쇠망치를 넣어 톤을 올려 말했다. 여자의 얼굴이 벌게지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제가 관장인데……, 왜 그러시지요?”

서 있던 여자 중 하나가 동식 쪽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아담한 몸매에 곱상한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관장이라 하기엔 너무 젊었고 여리어 보여 동식은 지금 나를 놀리나 하는 표정으로 세모눈을 뜨고 여자를 쳐다봤다. 

“관장……, 맞아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지요?”

여자는 굳은 눈으로 동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