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여주시오!’

휴대폰을 헐겁게 쥐고 있던 손가락에 악력이 들어갔다. 깊은 동굴 어디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곰팡이가 잔뜩 피어난 폐광 깊은 음습한 곳에서 만들어진 음성이었다. 늘어져 있던 강동식의 허리가 뻣뻣하게 곤두섰다. 양어깨 삼각근에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얌전히 누워 있던 호랑이와 용 문신이 인상을 구기며 긴장 모드에 들어갔다. 

사람을 죽여달라니, 지금 장난하나! 

대차게 소리를 질러주고 싶었지만 동식은 깊게 숨을 들이마셔 흉곽을 넓히면서 입 밖으로 솟구치려는 말을 꾹 눌렀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다들 동식처럼 온천물과 사우나로 데쳐질 대로 데쳐진 몸들을 하고 널브러져있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끊었다. 

오래만의 온천목욕이었다. 징역 내내 이 온천의 유황 냄새 나는 뜨끈한 물이 몹시 그리웠다. 교도소에서도 따뜻한 물로 샤워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건달이라 해도 뜨거운 물을 통에 받아놓고 몸을 담그지는 못한다. 

석정온천은 7년 전 하루가 멀게 드나들던 곳이다. 고창에 온천수가 나온다는 소식이 터지고 석정온천 상호로 문을 열었을 때, 동식은 무리들과 함께 날이면 날마다 이곳에 와서 몸을 지졌다.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 게르마늄 온천이란 소문을 듣고 인근 정읍 부안은 물론 전주나 광주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게르마늄을 머금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녹진한 일상의 피로를 씻어냈다.  

동식은 가슴에 나이키 로고가 박힌 하얀색 추리닝을 입은 뒤 석정온천 밖으로 나와 아우디에 몸을 실었다. 온천을 마친 후 후배가 하는 풍천장어집에서 장어에 복분자나 한잔 때릴 참이었는데 조금 전 받은 전화로 느긋한 휴식은 싹 날아가고 말았다. 장난전화일 거라 치부하려 했지만 고창 바닥에서 강동식에게 장난전화를 할 배짱 좋은 놈은 없다. 게다가 굵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누구야!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꾹 눌러놓았던 질문들을 여지없이 내동댕이치듯 팽개쳤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야했고, 어떤 의도로 사람을 죽여 달라는 말을 하는지 알아야 했다. 동식을 함정에 몰아놓으려 일을 꾸밀 수 있다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경계심은 건달로 살아오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몸에 배게 된 색안경이다. 

교도소 철창문을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포승줄을 몸에 두르는 것은 물론 형무소 철문을 들어서는 것도, 경찰서에 불려가는 것도 지겹기 짝이 없다. 

‘강동식 씨 아니요?’

상대는 오히려 되물어왔는데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음성은 아니다. 쇳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 목소리다. 

강동식 씨 아니요? 라는 되물음에 동식이 내동댕이쳤던 질문의 답이 들어 있었다. 강동식은 고창에서는 알아주는 건달이며, 식구들 가운데 가장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취지이다. 맥박이 빨라졌고 긴장되었다. 침을 꿀꺽 삼켜 정상 속도를 벗어나려는 심장 박동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