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문인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전주의 역사와 예술, 문학의 향기에 흠뻑 젖었다.
지난달 28일 전주시 일원에서 열린 ‘2025 전주 전국문학인대회’는 하루 종일 시와 노래,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펼쳐졌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등지에서 출발한 문학 예술인들은 전주 풍남문에 도착해 선화당과 전주한옥마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기념관 등을 돌아보며 1894년 전주화약의 정신과 동학농민군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이윤영 동학농민혁명관장의 해설은 단순한 역사 설명을 넘어, 동학의 이상과 정신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오후 1시부터 한국전통문화전당 2층 공연장에서 개막식이 열렸다. 장충열 시인의 사회로 시작된 개막식에서는 우범기 전주시장이 “전주는 오랜 문향의 도시이며, 이곳에서 문학인들이 모여 함께 호흡하는 이 자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환영사를 전했다.
김현조 전주문인협회장, 강민숙 펜앤팬 회장, 홍태식 유라시아문화포럼 이사장 등의 인사말과 함께 남관우 전주시의회 의장, 김진돈 전주시문화원장의 축사가 이어지며 전주 문학의 전통과 오늘을 함께 축하했다.
이어진 문학 발표에서는 김현조 시인이 전주 문인의 발자취와 문학 활동을 정리한 「전주 문인과 전주문학」을 발표했고, 강민숙 시인은 「전주 동학농민혁명과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을 통해 동학을 문학적 자산으로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를 제안했다. 정재영, 박근영 시인은 AI 시대의 문학적 대응과 젊은 문인의 영입 필요성, 동학정신의 예술적 승화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2부 행사인 “전주 문향에 젖다”는 전국의 문인들이 참여하는 시 낭송과 공연으로 꾸며졌다. 김애미 한국무용가는 「녹두꽃」을 주제로 한 단아하고 절제된 춤사위로 박수갈채를 받았고, 박영택 시인은 「전주막걸리」를 짙은 감성으로 낭송해 관객의 마음을 적셨다. 이어 무대에 오른 시인들은 각자의 작품을 통해 전주의 정취, 사라져가는 골목과 기억, 민중의 목소리를 시로 되살렸다.
김종숙 시인의 「사표, 전봉준」은 2024년 남태령에서 벌어진 농민 투쟁을 동학정신과 연결지은 작품으로 큰 울림을 남겼으며, 시인 윤철은 무대 위에서 직접 ‘전봉준 장군’의 대형 초상화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펼쳐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연 명창의 판소리 「김개남 장군가」는 민초의 비애를 절절하게 담아내며 눈시울을 붉히게 했고, 장정희 가수와 조창배 성악가의 무대는 음악으로 문학의 감정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줬다.
이날의 대미는 가족회관에서 열린 ‘전주 문학인의 밤’이 장식했다. 영화 속 김대중 대통령 목소리 성대모사로 잘 알려진 최바울 목사가 사회를 맡아 유쾌함을 더했고, 시인 박정근이 부른 「명태」는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는 가사로 가난한 시인들의 삶을 위로했다.
장정희 가수의 노래, 최인수 소아과 의사의 색소폰 연주까지 이어진 만찬장은 어느새 작은 음악축제로 변했고, 문인들은 무대 앞으로 나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전주의 밤을 환하게 수놓았다.
이번 전국문학인대회는 시상도, 경쟁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뜨겁고 진정성 있는 문학의 시간이었다.
동학의 도시 전주에서 다시 피어난 문학의 꽃은 참가자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감동을 안겨주었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외침처럼 문학도 사람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이만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