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타버린 나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들, 그리고 폐허가 된 마을에 남은 건 잿빛 적막뿐이었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뒤 사진에 심취한 정상호 사진작가(73)가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카메라에 담은 기록을 전시로 풀어냈다.
이번 사진전은 5월 7일부터 17일까지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동로에 있는 한벽문화관 1층 한벽전시실에서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쉰다.
정 작가는 강원 고성, 속초, 그리고 올해 3월 큰 산불이 있었던 경북 의성·영덕 등지를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 자리에 조용히 서서,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렌즈에 담았다.
“산불은 단 1초의 부주의로 시작되지만, 복구에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잿더미가 된 마을을 보며,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정 사진작가는 화재 현장의 사진을 촬영하며 전쟁터 같은 마을 풍경을 마주하며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온 마을이 잿빛으로 물든 그곳에서 그는 사진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그리고 미리 막아야 할 것들에 대해.
정상호 사진작가는 전북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한국사진작가협회 및 전주지부 정회원, 청록사우회, 한국영상동인회에서 활동 중이다.
2019년 ‘해녀들의 삶’을 주제로 한 첫 전시를 시작으로, ‘어촌일기’ 시리즈,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시리즈, ‘뚜벅뚜벅 미얀마를 걷다’ 등 여섯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8년부터 매년 단체전에 참여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진에 진심인 작가다.
정 사진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한 사진 감상을 넘어, 산불 예방에 대한 경각심과 생명·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 느끼는 일"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진전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자연의 상처,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정 사진작가의 사진을 통해 함께 마주해 보자. /이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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