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꿈을 꾸고 깨어서는 꿈을 쓰고, 시를 쓰면서도 시 쓰기를 갈망하는 일.”
이 한 문장은 시인 하기정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이자, 그의 삶을 관통하는 문학적 신념처럼 느껴진다.
시인 하기정이 첫 산문집 『건너가는 마음』을 출간했다.
2010년 시로 등단한 이후 세 권의 시집을 펴내며 선경문학상, 5·18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해 온 그는 이번 산문집을 통해 시의 영역 밖에서 건져 올린 삶의 감각들을 언어로 빚어냈다.
시인 문태준은 그의 문장을 “신기하고 매력적인 질문이 그득하다”고 평했고, 평론가 김지윤은 “낯설음과 낯익음이 뒤섞인 세계가 더욱 깊고 농익어간다”고 말했다.
산문집 『건너가는 마음』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빈 문서와 빚문서 사이에서」는 일상에서 문득 맞닥뜨리는 시적 순간들을 산문으로 끌어올려 삶의 경이를 포착한다.
그의 문장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언어를 통해 존재의 결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돌 속에는 수없이 들었던 많은 귀와 말하지 못한 무거운 입이 들어 있다”는 구절처럼, 그의 문장은 대상에 내재한 무게와 침묵을 기민하게 읽어낸다. 시를 쓰는 일이 곧 살아내는 일이며, 그 간절함은 마치 “진흙으로 만든 배를 띄우는” 심정으로 표현된다.
2부 「혼자인 것의 아름다움」은 한층 더 내밀하고 사유적인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시공간, 기억, 존재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인의 내면 풍경을 펼쳐 보인다. 어린 시절 오동잎 하나가 덮었던 발등의 감각이 먼 훗날 도달한 감정으로 회귀하고, “죽은 별이 오늘밤 내 눈에 들어왔다”는 깨달음은 시인만이 가닿을 수 있는 시간의 결을 보여준다.
그의 문장은 독자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지며, 삶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게 만든다. “문학은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그의 시선이 오롯이 담긴 대목이다.
3부 「오래전 그런 말이 있었지」에서는 유년의 기억과 상실, 사랑과 그리움이 겹겹이 얽혀 있다.
“밥의 온도는 사랑의 온도”라는 문장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온기를 이야기한다. 존재의 이면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보편적인 감정도 특별한 경험으로 바꾼다. 과거의 단상이 현재의 감정과 조우하며, 그리움의 결이 문장에 담긴다.
『건너가는 마음』은 시인이 언어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의 기록이자, 삶과 문학을 오가는 진심 어린 여정이다.
시처럼 정제된 산문, 산문처럼 살아 있는 시적 언어가 공존하는 이 책은 독자에게 삶의 여러 단면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찰을 선사한다. 문학적 실험과 진솔한 고백이 어우러져, 읽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린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삶을 조금 더 천천히, 다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건너온 마음은 이제 독자의 마음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다시 누군가에게 건너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시인의 섬세함이 담긴 산문집의 일독을 권한다. /이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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