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어긋나면 그만. 두 번의 기회는 없기에, 촌음을 아껴 순간순간 정신과 감정을 몰입하는 것만이 묘책이다. 약속이라 할 것도 없이 마주친 눈빛 하나로 그림은 시작된다. 사각사각 종이를 스치는 콘테의 마찰음 뿐. 초긴장의 시간이 흐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마치 생존이라도 건 전투를 벌이듯이 불과 5분 아니면 3분이라는 일순과의 즐거운 사투’
정해춘 작가는 크로키 작업에 대한 단상을 이같이 표현한다.

크로키는 일견 무심한 듯 쓱싹쓱싹 그린 그림 같아 보이지만, 이는 군더더기 없는 몇 개의 선만으로 비례를 맞춰 적확하게 그려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어찌 보면 깐깐한 작업을 요하는 그림이다.
이에 대해 정 작가는 “크로키는 고도의 집중력·순발력·통찰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만 그림에서 일체감과 생동감이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교동아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율동 그리고 그림자’ 전에서 정 작가는 선의 강약을 조절함으로써 때로는 역동성을, 혹은 리듬감을 통해 단순해 보이는 크로키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인체의 동작은 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으며 움직임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영상을 얻을 수 있어 작품의 모티브로 삼는다”며 “누드 그림을 터부시 하지 말고 인체의 아름답고 완전한 곡선 자체로써 감상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해춘 작가는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전북도립미술관 개관 초대, 대한민국 중심작가 초대전 등에서 전시활동을 펴왔으며, 한국누드미술대상전, 전북미술대전, 벽골미술대전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전미회, 노령회 전주누드크로키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15회째인 이번 개인전은 내년 1월 8일까지 교동아트스튜디오에서 열린다.
/정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