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국악원, <나운규, 아리랑>

나운규(1902~1937년)는 시나리오·각색·편집과 감독·주연까지 다방면에 능한 영화인이었다.
1924년 연기자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이듬해 주연 배우로 발탁되었고, 1926년 22살의 나이에는 영화<아리랑> 제작자로써도 성공하며 화려한 인생을 살아간다. 영화도 탄탄대로를 달려 2년 6개월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에 상영된다. 나운규는 아리랑 이후 활발한 영화 활동을 이어가지만, 예술영화 제작의 후유증으로 인해 재정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종국에는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아리랑>은 민족의 저항과 역경 그리고 의지를 영상에 담아냄으로써 고단한 삶을 일궈가는 이들에게 ‘핍박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신세계를 선물했다. 이와 함께 배경음악으로 쓰인 전래 민요<아리랑>은 노래하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안기며 민족의 숨통을 열어 주었다.
이러한 가치로 인해 ‘아리랑’은 한민족의 상징적인 단어가 되었다.
올해로 탄생 90주년을 맞은 영화<아리랑>의 얼과 나운규에 경의를 표하고자 국립민속국악원은 이를 창극으로 제작, 지난 1일 시연회를 열었다. 이는 영화인 나운규의 삶과 그의 작품 아리랑을 창극에 투영해 낸다.
작품은 이중구조로 1926년도의 아리랑작품이 창극으로 개작돼 무대에서 공연되는 상황과 이 창극의 변사 역할을 맡아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현대를 살아가는 창극배우 나운규의 삶이 그려진다.
극중 창극배우 천상민이 친구 나운규를 찾아와 우수 공연지원에서 탈락한 이유를 묻는다. 이에 나운규는 작품을 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조금 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상민은 “언제 적 아리랑이냐? 10년째다.”라며 “이제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동료 박 선생도 밀린 출연료를 요구한다. “우린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다. 있는 놈들이 더한다.”며 그를 몰아친다.
이에 창극배우 나운규는 “어떡하라고, 어떡하라고... 아무것도 없는데. 진짜.” 하며 절규한다. 이는 시대를 막론한 예술가들의 공통된 외침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창극에는 수십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며 안식의 의자로 향해가는 나운규의 고달픈 삶이 묻어난다. 또 설사 그곳에 다다른다 하더라도 두 줄에 매달린 위태위태한 그네의자만이 그를 기다릴 뿐이다.
나운규 아리랑은 창극으로서의 대중적인 시도는 좋았으나 극의 내용을 단박에 이해하기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또한 의자에서 단원들이 추는 군무와 나운규가 방탕한 일상을 연기하는 장면은 뮤지컬 시카고를, 나운규의 장례식에 등장하는 단원들의 우산 군무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해 아쉬움을 남긴다.
창극 나운규 아리랑은 2~4일 남원에서 초연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대전, 서울에서 공연된다.
/정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