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덕진구청의 황옥 주무관을 지난 22일, 부안에서 진행한 연탄봉사 현장에서 만났다.
그가 남긴 헌혈 기록은 벌써 502회. 스스로 “헌혈 전도사”라고 말할 만큼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 온 그는, 소박하지만 묵직한 이유로 30여 년이 넘는 시간을 헌혈과 함께 걸어왔다.
황 주무관의 헌혈 첫 시작은 1991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학교로 찾아온 헌혈버스에서 담임선생님이 들려준 “헌혈의 의미와 필요성”이 마음에 새겨졌다.
특별한 계기 없이 친구들과 팔을 걷어붙인 첫 헌혈이었지만, 그 경험은 훗날 그의 인생을 바꾼 작은 씨앗이 됐다.
“20대 중후반쯤이었어요. 뉴스를 보는데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혈액을 수입해 온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국민이 조금씩만 헌혈하면 될 텐데 왜 혈액이 부족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헌혈은 제 삶의 일부분이 되었죠.”
그는 전혈, 혈장, 혈소판 등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꾸준히 헌혈을 이어왔다. 전혈은 연간 5회, 성분 헌혈(혈장 헌혈과 혈소판 헌혈)은 보름에 한 번씩 가능한 만큼 그의 헌혈 일정은 늘 바쁘다. “건강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그의 말은 담담하지만, 502회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가 헌혈 후 받는 헌혈증서는 단 한 장도 본인이 사용한 적이 없다. 혈액원, 직장 동료, 지인 등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모두 기부해 왔다. “헌혈증은 필요한 분이 쓰셔야 하죠.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황 주무관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헌혈을 향한 그의 진심은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황 주무관은 10여 년 전부터 ‘좋은 일은 알리고 함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주변 동료·친구들에게 헌혈을 권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재 그의 주변에는 다회 헌혈자가 적지 않다.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들에게도 헌혈의 가치를 설명하며 직접 데리고 헌혈에 참여시키고 있다.
“요즘은 혼자 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보통 10명 정도가 함께 가요.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간 친구들도 여전히 헌혈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저 뿌듯합니다.”
황 주무관의 헌신은 사회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는 그간의 공로로 전북도민일보 ‘친절 봉사 대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헌혈로 널리 알려진 그의 ‘나눔 DNA’는 가족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둔 큰아들은 이미 헌혈에 동참하고 있으며, 중학생인 둘째와 초등학교 4학년인 셋째도 “아빠처럼 꼭 하고 싶다”고 말한다. 건강 문제로 함께하지 못하는 아내는 “좋은 일 하니 응원한다”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헌혈로 인한 건강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그는 단호하다.
“전혀 문제 없습니다. 오히려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아 건강을 더 꼼꼼히 챙기게 돼요. 제 주변에서도 꾸준히 헌혈하신 분들은 대부분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헌혈은 여전히 많은 시민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황 주무관은 말한다.
“헌혈을 하는 사람만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한 번 용기를 내면, 그 용기가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어요. 한 번만 해보시면 압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는 기쁨을요.”
다른 사람은 한 번도 하기 힘든 헌혈을 황옥 주무관은 502번이나 실행한 헌혈 대기록. 그것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을 향한 한 사람의 묵묵한 헌신의 기록이다.
황옥 주무관은 오늘도 말없이 자신의 팔을 내민다.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는 가장 따뜻한 손길로. /이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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