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가 심각한 인구 감소와 산업기반 약화로 지역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과 자치권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국정감사 현장에서 쏟아졌다.
28일 오전 전북도청에서 열린 2025년도 국정감사는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주재로 김성희·고동진·모경종·박덕흠·박정현·박수민·이해식·정춘생·채현일·한병도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감사는 전북의 인구 구조, 산업 여건, 재정 자립도 등 지역 현안을 냉철히 점검하는 자리였다.
김관영 도지사는 “전북은 지난 10년간 인구가 7.1% 감소해 전국 광역단체 중 가장 큰 폭의 감소를 보였다”며 “매년 약 8,500명의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고 보고했다.
현재 도내 14개 시군 중 10곳이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지역 내 산업기반이 취약해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도지사는 “전북은 전통문화와 K-콘텐츠의 중심지이지만 산업 다양성이 부족해 인구 유출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북은 2024년 1월 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며 ‘지방 분권의 모범’으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권한과 재정은 여전히 중앙의 틀에 묶여 있다. 김 도지사는 “지역 특화 산업을 테스트 베드로 운영하려 했으나 예산 자율권이 제한돼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지방교부세 확대, 국고보조율 차등 인상, 별도 재정 계정 설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천영평 전북도 기획조정실장은 보고를 통해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 총력 ▲새만금 글로벌 규제 ZERO특구 지정 ▲RE100 가속화와 주력산업 친환경 전환 ▲신산업 생태계 기반 조성 ▲기업유치와 육성으로 전북경제 체질 개선 ▲농생명 신산업 고도화 및 디지털 전환 가속화 ▲전북특별법 실효성 강화 등 7대 중점과제를 설명했다.
그리고 주요현안으로 ▲잔북특별법 2차 개정안 입법지원, ▲제2중앙경찰학교 설립 부지 남원 유치 지원, ▲(가칭) 한국재안안전산업진흥원 유치 지원,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지원, ▲통합 자치단체 재정 인센티브 강화,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용기준 완화 및 배분기준 보완,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 재정지원, ▲재정 불균형 해소를 위한 지방 재정 확충 등을 건의했다.
감사에서는 중앙정부의 공모사업 제도가 지방재정 자립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됐다. 사업에 선정되더라도 지방비 매칭 부담이 커 자율적인 재정 운영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부 의원들은 “중앙이 사업을 쥐고 예산을 배분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지방이 주도하는 포괄보조금 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률이 전국 평균 62.48%에 그치고, 전북도 역시 4,097억 원 중 994억 원이 미집행된 점이 지적됐다. 기금이 일회성 행사나 전시성 사업에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전북은 최근 전주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도시로 선정되며 지역 균형발전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러나 총사업비의 40%를 지자체가 분담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막대한 재정 부담이 우려된다.
김관영 도지사는 “올림픽은 지역경제 도약의 기회이자 국민통합의 상징이 될 것”이라며 “국회 차원의 유치지원특별위원회 구성과 초당적 지원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새만금 개발사업과 관련해서는 “30년간 지체된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새만금 메가 샌드박스’를 설계하고,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해 RE100 전환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서울행정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리자, 김 도지사는 “공항은 새만금 트라이포트(공항-항만-철도)를 완성할 핵심 인프라”라며 “항소심에서 반드시 승소해 사업을 정상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인구의 수도권 순유출이 2024년 기준 5,300명에 이르는 가운데, 도의 핵심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창업 생태계 조성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의원들은 “청년 정책이 부서별로 흩어져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도지사 직속의 청년 전담 조직 설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전북 청년의 평균 월세가 46만 원을 웃도는 등 정주 여건이 열악해,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주거·문화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재난안전 분야에서는 전북연구원 내 재난 전담부서가 없어 정책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원들은 “폭우 피해를 겪고도 재난 대응 조직이 부재한 것은 문제”라며 조속한 설치를 주문했다.
전북소방본부 역시 구조구급과와 교육훈련과가 없어 타 광역단체보다 조직 규모가 작고, 소방공무원 1인당 피복 예산도 전국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이에 “도민 안전을 위한 예산 확충이 필요하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감사에서는 동부권과 서남권의 불균형 문제도 다뤄졌다. 남원·진안 등 동부권 중심의 특화사업 추진에 비해 고창·정읍·김제 등 서남권의 정주 인구 감소가 심각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의원들은 “서남권 개발을 위한 공동 특별회계 설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남원시 모노레일 사업 중단으로 400억 원대 배상금이 예상되는 사례를 들어, “지자체장의 정책 변동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농촌 노인 복지를 위한 ‘이동 장터’ 사업을 복지 플랫폼으로 확대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또한 전북도의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가 3등급에 머물고 있어, 의원들은 “공직 비위와 갑질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고 청렴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국정감사는 전북 발전을 염원하는 의원들의 애정 어린 질의와 도의 성실한 답변 속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도는 “수용할 것은 과감히 수용하겠다”며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과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감사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의원들의 보충 질의가 이어지며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이날 국정감사는 지방소멸 위기를 넘어 균형발전의 길을 열기 위한 전북의 현실과 과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자리로 평가됐다. /이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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