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교통이 끊기면 삶도 끊긴다… 이번 헌법 개정안에는 교통권을 반드시 명시해야

전북의 동계면 시골 마을. 83세 이모씨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선다. 오늘은 병원 진료를 받는 날이다. 터미널까지는 걸어가야만 한다.

가파른 언덕을 넘고 굽은 허리를 겨우 일으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도,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배차간격이 두 시간이 넘기 때문이다.

봄바람은 싸늘하고 의자는 차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버텨야 한다.

그 버스는 하루 다섯 번 운행한다. 남원행 9시 40분. 그다음은 12시 40분이다. 동계에서 순창과 오수는 그래도 1시간 간격이지만, 전주행 직행버스는 하루 한 대. 버스를 놓치면 병원에도, 시골 장에도, 갈 수가 없다.

비단 이씨 할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농촌에는 ‘차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고령이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운전이 어려운 이들이다.

면허가 있어도 더 이상 운전대를 잡을 수 없어 자가용을 포기했다. 이들은 오직 대중교통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러나 그 대중교통조차 줄어들고 있다. 적자라는 이유다. 지난 3년간 50%나 줄어들었다는 동계 버스 터미널 이정길 관리소장의 하소연이다.

군내버스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노선은 축소되고, 배차는 줄고 있다. 택시는 부르면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기본 요금이 부담된다. 대중교통은 ‘그림의 떡’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교통은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먹고 살려면 장을 봐야 하며, 외로움을 달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 모든 일상의 시작이 교통이다. 교통이 없으면 모든 일상이 정지된다. 삶은 집 안에 갇히고, 관계는 끊기며, 외로움과 우울이 깊어진다. 결국 건강마저 위협받는다.

이동할 수 없는 삶은 더 이상 삶이라 부를 수 없다.

고령화는 이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 국민의 18.4%가 65세 이상이며, 2025년에는 20.6%로 올라설 전망이다. 다섯 사람 중 하나가 노인이 되는 시대다.

특히 농촌은 더 심각하다. 고흥군의 경우 고령화율이 38.2%에 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통은 복지이자 의료이며, 무엇보다 생존권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헌법에는 ‘교통권’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버스를 탈 수 없는 사람들’은 그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다.

반면 외국은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통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81조는 “연방은 국민이 환경친화적인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단순한 교통 서비스가 아닌, 공공이 책임지는 필수권리로 본 것이다.

브라질은 2015년 헌법을 개정해, 연방헌법 제6조에 교통을 교육·보건·주거와 함께 기본 사회권으로 포함시켰다.

독일 역시 기본법에서 교통을 명시하고 있으며, 포르투갈 공화국 헌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교통을 공공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교통이 없으면 국민의 삶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인식했다. 그래서 헌법에 명시하고, 교통정책을 ‘복지’가 아닌 ‘권리’로 접근한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교통은 ‘선심성 정책’으로 여겨진다. 농촌에 버스를 추가로 투입하는 일은 예산에 여유가 있을 때만 고려된다. 노인을 위한 무상 교통정책도 정치적 이슈가 되어야만 잠깐 주목을 받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는 헌법이 답할 때다. 교통을 헌법상의 권리로 명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와 지자체는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법이 명확해야 정책이 움직이고, 예산이 따르고, 제도가 생긴다.

교통권을 헌법에 명시하는 일은 단순한 문구 삽입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장 연약한 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시골 어귀의 정류장까지 헌법이 닿게 하겠다는 다짐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병원에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고, 장을 보러 나갈 수 있으며, 손주의 얼굴을 보러 자유롭게 나설 수 있는 그런 살만한 나라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모 할머니가 오늘도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는 그 자리에서, 헌법은 응답해야 한다.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이때 교통권을 헌법에 담는 일은 바로 지금 이때다.

이만호 / 본보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