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는 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다. 달리 말하자면 정치가는 혀로 먹고 사는 프로이다. 혀를 움직이는 것에 관한 한 그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의 혀가 다루는 대상은 수십 수백 수천 가지다. 그에 더하여 그들은 국정에 관한 것 외에도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혀가 누리는 범위는 광활하다. 그리고 그들의 혀는 힘차고 활발하다. 그만큼 권력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들 중에는 혀가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있다. 혀 짧은 말을 하는 이들이 가끔가다 불거져 나와 세상에 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혀 짧은 소리를 하는 것은 생각이 짧아서이지 혀가 짧아서가 아니다. 그들의 혀는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정상이다. 그 정상적인 혀로 제대로 된 말을 하기는커녕 돼먹지 못한 말을 내뱉는 이들이 있으니 답답하다. 혀의 달인이라고 하는 정치가들 중에 그런 자들이 섞여 있어도 많이 섞여 있으니 말이다.
정치가들이 뜻밖의 발언으로 대중의 실소를 자주 사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때로는 혀를 끌끌 차게 하는 정도의 말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말실수라는 게 어떤 때는 망언 그 자체라서 도저히 덮어줄래야 덮어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내뱉은 말이 그랬다. 춘향전을 비하해도 상식 이하의 정서를 드러내며 비하한 까닭이다. 하짓날이던 지난 22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있었던 한국표준협회초청 최고경영자 조찬모임 때의 일이다. 그는 그때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했어야 했다. 생각나는 대로 말을 쏟아내기 보다는 생각을 거르면서 말해야했다. 자리가 자리이니만치 반드시 그래야했다. 하지만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춘향전이 뭡니까? 변학도가 춘향이 따먹으려고 한 것 아닙니까!”
이같이 저열한 발언이 다른 사람도 아닌 김문수 지사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김문수 지사가 누구인가. 그는 정치 초년병이 아니다. 정계에서 산전수전에 공중전과 지하전까지 겪은 베테랑이다. 그에 더하여 지금은 차기 대권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부상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는 문화면에도 관심이 깊어서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과도 개인적인 교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그렇게 몰상식한 말을 한 것은 전혀 예상 밖이다.
김 지사의 발언을 두고서 남원시민들은 물론이고 전북도민들이 크게 분노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회단체와 봉사단체와 여성단체 등 백여 개 단체가 들고 일어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김문수 경기지사 춘향전 망언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퇴진 운동을 벌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김 지사의 발언이 적절치 못했다고 비난했음은 물론이다.
김 지사가 도지사 취임 1주년을 맞아서 지난 27일 YTN과 가진 인터뷰에서 죄송하다며 공식사과를 했지만 뒷맛이 쓰다. 김 지사가 젊은이도 아니고 육십이 넘은 나이인데다 그 발언이 생각할수록 너무 야하고 속되기 때문이다. 그가 앞으로 그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용서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면죄되는 것은 아니다. 망발의 흔적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은 채로 그의 인격의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 것마저 지울 수는 없다. “아나운서를 하려면 모든 것을 다 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 는 발언으로 끝끝내 당과 국회에서 제명당한 강용석의 경우를 망각했던 것일까. 자신의 망언으로 최대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아마 그 자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