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을 떠올리자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그 상상력은 전혀 어렵지 않다.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낙원의 풍경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 낙원이 봄이라면 과수원마다 온갖 꽃나무들이 만발해 있기 마련이다. 소풍을 나온 가족들은 벚꽃나무의 그늘 아래 모여서 바이올린이나 플투트를 연주하고 있고, 어린이들은 강아지와 함께 초록색 너른 들판을 내달린다. 들판 멀리 언덕에는 양이며 사슴이며 순한 동물들이 저희들끼리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새파란 창공에는 비둘기가 떼를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내가 그리는 낙원도 그런 풍경이다. 그런데 그 낙원 풍경에 내가 빠뜨리지 않고 등장시키는 곤충이 있다. 바로 꿀벌이다. 20세기의 대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쓴 <이니스프리의 호도>를 읽은 후부터 갖게 된 정서이다.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내 나이가 열여섯이었으니 그 정서의 연륜이 마흔 번도 더 감겼다. 김용호 시인이 번역한 그 시의 첫 연을 회상하면 이렇다.
나는 이제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가련다. /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집 짓고
 아홉 이랑 콩밭 갈며 꿀벌도 치며 / 벌이 노래하는 숲 속에서 홀로 살련다.
내가 낙원의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꿀벌이 반드시 등장해야만 하는 정서는 나중에 더욱 강화된다. 우리 고장이 낳은 신석정 시인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교과서를 통해서 읽게 된 것이다. 그 시의 마지막 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그런데 요즘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해 전국적으로 토종벌 90% 이상을 폐사시켜 악명을 떨친 ‘낭충봉아부패병(囊蟲蜂兒腐敗病)이 올해 또 다시 창궐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괴질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밝혀졌을 뿐, 그 온전한 정체가 여태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사정이 그러니 치료제 개발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오늘날 꿀벌들이 당하는 재앙은 그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낙원을 동경하기는 고사하고 마구 설쳐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 국토가 파괴되고 있으니 왜 아니 그러랴. 예전에 그 많던 꿀벌들이 꽃이란 꽃마다 잉잉대던 정경이 하염없이 그립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