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함에 따라 무업이 많이 사라졌다 해도 신동댁이나 연기댁은 당골래로서 자신들의 당골판을 유지하면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고 그녀들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러나 굿패는 여건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무장면 덕림리에 사는 유림 정방규는 용오정사에서 굿패들을 불러다가 격려하고 굿패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왜놈 관원이나 다른 향리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전쟁으로 인해 쇠가 되는 물건은 요강단지마저도 공출해가는 형편이라 꽹과리나 징 같은 쇠붙이를 마음대로 들어 내놓고 집안에 전시할 수는 없어 나름 머리를 굴러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굿과 당산굿 등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나름 고창지역 마을 사람들은 눈에 들어나지 않게 정안수라도 떠놓고 간소하게나마 제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매굿이나 당산굿을 이어가는 마을도 몇몇이 남아 있었고 송계리 도산마을도 그중 하나였다. 

도산마을에도 마을 나름의 굿을 치는 이들이 있어 패를 만들 수 있었지만 당산제 같은 격이 있는 제를 지내려면 실력 있는 굿패가 필요했고, 마을에서 따로 강병도와 박규환이 속해 있는 굿패와 신동댁이나 연기댁 같은 무당을 같이 불렀던 것이다. 

굿 연행은 외부의 굿패와 마을의 패가 같이 합동 연행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었다. 도산마을 굿은 대보름 전날 오후부터 시작될 것이다.

 

“너희들도 갈 거냐?”

 

연기댁이 남준과 명희에게 물었다. 

“예, 가야지요. 굿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이 어디 있다고요. 헤헤헤.”

“많이 추울 텐데도?”

“우리만 추운 게 아니잖아요. 아버지, 어머니도 추울 텐데…….”

“누가 당골래 자식들 아니랄까봐. 호호호.”

신동댁과 연기댁 내외는 남준과 명희가 대견한 듯 웃었다. 

다음날 남준과 명희는 오후부터 시작될 도산마을 굿 구경 갈 기대에 마음이 풍선을 달고 하늘 높이 떠올라 있는 터라 교실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급증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던 둘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리듯 남준의 집이 있는 봉림마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주하듯 뛰어갔다. 집에 닿으면 굿패들이 갖가지 화려한 색상의 옷들을 입고 굿을 하러 출발할 채비를 차리고 있을 터였다. 

모퉁이를 돌아서 집근처에 다다랐으나 웅성웅성해야할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굿판을 뛸 치배와 잡색들로 집안이 북적거려야 할 텐데 웬일이지. 

고개를 갸웃뚱하며 싸리문을 들어섰으나 마당에도 마루에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댓돌에 놓여 있는 신발도 남준의 부모님 것으로 보이는 것만 있었다. 

게다가 작은 방과 광문이 열려 있었고 집안 가재도구들이 마당에 어지럽게 나와 흩어져 있었다. 명희는 마당에 서 있고 남준만 댓돌로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 

방에는 신동댁과 아버지 강병도가 있었는데, 강병도는 이마에 깊은 고랑을 파고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면에서 나와서 꽹매기랑 쟁을 모두 가져가버렸다.”

신동댁이 아버지 강병도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했다. 

“육시를 할 놈들…….”

강병도는 한숨과 함께 공방대를 연거푸 빨아 연기를 푹푹 내뱉으며 욕지기를 뱉어냈다. 동생 남주도 아버지,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굿은……?”

“굿패는 못 가고 아버지랑 어매하고 명희 아버지랑 명희 어매만 가기로 했다.”

문밖에 서 있던 명희도 풀이 죽어 고개를 깊숙이 숙여 강병도와 신동댁에게 인사한 뒤 싸리문 밖으로 나갔다. 

“도산에는 쇠가 있을 텐데…….”

“그쪽에서 먼저 탈이 나서 가져가버리고 우리한테도 와서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아버지 강병도가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해줬다. 

“그놈들 곧 망할 거야. 망하고 말 거라고. 발악을 하고 있는 거야, 발악을…….”

점괘를 읊어내듯 신동댁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