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의 애플이 항상 잘나갔던 것은 아닙니다. 1984년 컴퓨터 시장에 매킨토시 돌풍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소프트웨어가 출현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1996년 매킨토시의 미국 내 점유율이 2% 밑으로 떨어지면서 10억 달러 적자를 냈습니다. 시가총액이 마이크로소프트(2500억 달러)의 1.6%인 40억 달러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듬해 ‘경영 구원투수’로 돌아온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토니 퍼델을 영입해 휴대용 음악재생기기인 아이팟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때까지 오디오기기들은 카세트테이프나 CD(콤팩트디스크) 등으로만 재생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용량과 음질 등에서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잡스와 퍼델은 디지털로 무한재생이 가능한 고음질의 오디오 주크박스를 생각해냈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아이팟의 아버지’로 불리는 퍼델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빌드 창조의 과정(비즈니스북스 펴냄, 원제 BUILD An Unorthodox Guide To Making Things Worth Making)>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시제품도 없었고, 디자인도 없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10개월 만에 아이팟을 세상에 내놓았고,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대단한 비결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상자 밖에서 생각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1주일에 90시간, 100시간, 또는 120시간씩 일하며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음악재생의 판을 바꾼 디지털기기가 나왔지만, 소비자들이 혁신제품의 의미를 금세 깨닫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잡스가 내놓은 슬로건이 소비자들을 확 깨어나게 했습니다. “1,000곡의 노래를 당신의 주머니 안에.” 아이팟은 세계 시장에서 1억대가 팔리며 애플을 수렁에서 건져냈을 뿐 아니라, 후속 제품인 아이폰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퍼델은 잡스에게 가장 크게 배운 것으로 ‘스토리텔링’을 꼽습니다. “잡스는 어떤 제품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기에 앞서, 늘 먼저 그 제품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 모든 걸 아주 자연스럽고도 쉽게 느껴지게 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대본을 읽은 게 아니었다. 제품 개발기간 내내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다듬었다.”
설명 과정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거나 자세하게 말해달라고 할 때마다 스토리를 수정해 나갔습니다. “위대한 비유는 어려운 특징이나 기능을 고객이 금방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그런 다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퍼델은 세상을 바꾸는 신제품 아이디어를 ‘진통제’에 비유합니다.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는 비타민이 아니라 진통제다. 비타민은 건강에 좋긴 하지만 꼭 복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복용을 건너뛰어도 그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반면 진통제는 한 번만 복용하는 걸 잊어도 바로 결과가 나타난다.” 혁신 아이디어가 이와 같답니다. “일상생활에서 뭔가에 너무 큰 좌절감을 느껴 그 문제를 파고들며 해결책을 찾아내려 애쓰는 사람들이 혁신을 일으킨다.”
잡스가 이런 혁신가였습니다. “그는 극도로 책임감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모든 사람에게 경계를 넓힐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기업 관료주의로부터 개발팀을 보호했고, 실패를 용인해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게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멘토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하는 대신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학영 / 경제사회연구원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