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1일까지 gallery숨에서 『초식거미 다이어리』라는 주제로 여은희 개인전이 열린다.  

                               

올해는 특별히 40대 이후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초대전이다. 20~30대의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지원들에 비해 점점 축소돼 가는 지원 앞에서 홀로서기 의지를 다짐해야하는 40대 이후 작가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다. 

작가에 따르면 <초식거미 다이어리>는 올해 3월부터 내가 먹는 채식을 기록하고 있다.

비건의 삶을 기록하는 인생 프로젝트로, 먹는 것을 매일 관찰하고 글쓰기와 드로잉, 퀼트 작업을 한다. 퀼트는 매일 먹고 남은 채소와 과일 껍질, 부패하는 잉여물을 바느질로 연결하고 봉합한다. 

채식퀼트는 바짝 말린 후 서로 연결하면 뜻밖의 새로운 예술조형물로 부활하여 생명에서 부패와 소멸의 과정과 순환을 보여준다.

1~2월 내내 작업구상을 했다. 영감은 떠오르지 않은 채 무수한 몽상의 조각들로 머릿속에 가득 찼다. 

벌레 먹은 텃밭 사과와 귤을 먹으며 수북히 남은 껍질들을 보고, 소멸되며 몸속의 에너지로 부활한 알맹이와 쓰레기가 된 껍질의 차이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 속의 싹 난 감자와 곰팡이가 핀 단호박 등 해를 넘긴 채소들을 보면서, 생태적 삶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인간의 생명을 채워주는 음식의 생명력은 곧 부패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탄생의 순간부터 소멸과 죽음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나의 생태의식은 장자의 무위사상과 붓다의 연기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소유와 존재개념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 

장자의 무위는 아무것도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가는 자연의 법칙을 나타내는 것이자 자신에 맞는 삶에 대한 추구를 의미한다. 붓다의 연기설은 내 몸과 내가 먹은 귤의 관계처럼 관계와 인연에 의해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논리다. 에크하르트는 소유에 집착하는 삶이 아닌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한 삶을 강조했다. 

이들 사상의 공통점은 순환하는 생의 이치를 인식하고 자아실현의 삶을 추구하고자 정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의 내면에 스며들어 창작의 근원이 되었다. 

  

비건의 삶을 기록하는 채식 부산물 퀼트 작업은 삶 자체를 예술로 표현하는 놀이처럼 생각되어 흥미롭다. 작업의 철학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면 생명의 탄생과 소멸의 순환을 나타내는데 그 과정에서 부패 단계를 ‘소멸의 미’로 포착했다.

한편 작가는 ‘초식거미 베스(Ves-Vegetarian Spider)’라는 약자로 활동 중이며, 생태를 화두로 타피스트리 기법을 사용해 생명의 순환과 연결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학부에서는 산업미술과 섬유공예를 전공하고,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섬유미술과 미술이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23년 15회 개인전 <시가 되는 꿈>을 열었고, 제22회 한국공예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장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