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올림픽 접영 200미터 결승전에서 미국 대표선수 마이클 펠프스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경기 도중 물안경에 물이 새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영장 바닥의 레인 마커와 수영장의 끝을 알리는 벽, 경쟁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어둠 속에서 수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펠프스는 그런데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수영장을 한 번 가로지르는 데 스물한 번의 스트로크(팔로 물을 끌어당기는 동작)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침착하게 스트로크에 집중했고, 스물한 번째 스트로크가 끝나자 손을 내밀어 벽을 짚었습니다. 또 하나의 금메달과 세계신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라톤 세계기록 2시간의 벽을 깨고자 나이키가 2017년 개최한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를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경기가 중반부를 넘어서자 대부분 선수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는데도 킵초게만은 미소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시간00분25초의 기록으로 경기를 마친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리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으로 달립니다.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리의 감각이 무뎌지도록 정신을 통제할 수 있거든요.”
영국 스포츠심리학 박사인 노엘 브릭과 스포츠 저널리스트 스콧 더글러스가 쓴 책 <무엇이든 이뤄내는 강한 마음(바다출판사 펴냄, 원제 Strong Minds)>에 두 선수의 비결이 소개돼 있습니다. “뛰어난 운동선수들은 ‘죽어라 버티지’ 않는다. 정교하게 설계된 마인드 컨트롤 전략에 따라 움직인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한계를 넘게 하는 건 그들의 신체 능력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펠프스가 돌발 사고를 거뜬하게 이겨낸 것은 ‘이프덴 플래닝(if-then planning)’ 덕분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핵심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목표 달성이 방해받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만약 x라는 상황이 발생하면 y를 실행해 대응한다”는 작전을 미리 세워두고 반복적으로 훈련합니다. “이프덴 플래닝은 상상할 수 있는 나쁜 상황을 떠올리고 그럴 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놓는 스토아철학의 방법과 닮았다.”
킵초게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내내 웃음을 달고 달린 것 역시 과학적 훈련법의 소산입니다. 노엘 브릭의 연구결과 달리기 선수들은 무표정일 때보다 웃을 때 에너지 소비를 2% 줄이면서도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킵초게의 신체능력을 테스트한 생리학자들은 그의 신체가 다른 엘리트 선수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마음과 정신으로 달리면 다리를 더 잘 쓸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과학연구로 입증된 것이다.”
극심한 압박감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운동선수들을 보면 ‘감정 억제의 달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도의 심리기술과 마인드전략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운동선수는 감정 억제가 좋은 감정조절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감정 억제에는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동원하는 것이 ‘감정의 재평가를 통한 건설적 반응 유발’입니다. “경기를 앞두고 불안하다면 ‘우리 몸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바꿔 생각하라.”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운동선수는 다섯 가지의 심리기술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답니다. 목표 설정 및 달성방법에 관한 기술,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 집중력을 높이는 기술, 스스로와 대화하는 기술, 자신감을 키우는 기술이 그것입니다. 브릭은 “이 같은 스포츠심리학의 발견을 일반인들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발휘해야 할 능력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포기를 포기하기’이다.”
이학영 / 경제사회연구원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