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다. 의자가 있다. 나무도 있다. 찌르르 찌르르 새 소리가 요란하다. 앞을 바라보니, 눈이 활짝 열린다. 예쁜 꽃이 만발하였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자연과 하나 된 눈에 담기 좋은 꽃도, 비어 있는 듯 비어 있는 짝꿍 의자 두 개도, 같은 듯 다르게 제 맘대로다. 

길에는 꽃이 꽃을 피운다, 그 옆에, 이름 없는 빈 의자는 허전하다. 활짝 웃으며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마도 아득한 첫사랑이 그리워 기다리는 모습은 아닐까? 항상 누군가를 위해 소리 없이 등을 내주는 의자, 그 의자의 삶이다. 꽃도, 바람도, 구름도, 새들도, 운동길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의자가 있다. 나무도, 의자도, 꽃들도, 제 맘대로인 첫사랑도 다 지나가 버렸다. 결국, 그들이 바람 따라 꽃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길, 그 길에는, 바람이, 구름이, 꽃들이, 새들이, 그 누군가가, 이 속절없는 의자의 터줏대감 되어 세월 속에 나올 줄을 모른다. 해가 고개를 내민다.

박여범 / 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