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연일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고유정 사건’이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되면 경찰은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되는데 이 같이 미흡한 초동수사를 되풀이하는 경찰에 대한 ‘수사권 독립’에 대해 불신과 우려가 깊어지는 것이다. 

12일 제주 동부경찰서는 ‘전 남편 살해사건’ 피의자 고유정(36)씨를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등의 혐의로 제주지방검찰청에 구속 송치했지만 범죄혐의를 입증해야 할 직접증거인 피해자의 시신도 아직 찾지 못했다. 

당초 피해자인 전 남편 A모(36)씨의 남동생은 지난달 27일 오후 8시경 "형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A씨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고씨란 것을 확인한 경찰은 고씨를 상대로 전화 조사를 했다. 

당시 고유정은 "(피해자와) 아이 면접교섭으로 25일 만났다. (피해자가) 덮치려고 했는데 미수에 그치자 밤에 먼저 펜션을 나왔다"고 허위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혼자 펜션을 나왔다는 고씨의 주장과는 다르게 자신의 차량인 모닝이 펜션에 그대로 세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진술을 그대로 믿은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확인하지 않은 채 A씨의 휴대전화 기지국 신호가 잡힌 이도1동을 중심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기지국 신호가 잡힌 이도1동은 고씨가 혐의를 벗기 위해 해당 지역에 이동해서 A씨의 휴대전화로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또, 경찰은 A씨의 유가족들로부터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해야했지만 이조차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이 경찰이 허위진술에 속아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고씨는 제주를 빠져나와 제주항-완도항 항로, 경기도 김포시 가족 소유의 집 인근 등에 시신을 유기했다. 

또, 경찰의 허술한 초동수사에 가만히 있을 수 없던 A씨의 남동생은 사건이 일어난 펜션 인근 주택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지난달 31일 경찰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영상에는 고씨가 지난달 25일 A씨와 함께 펜션에 들어간 뒤, 27일 홀로 빠져나오는 수상한 모습이 담겨 있다. 

고씨의 허위진술 여부와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증거조차 A씨의 유족이 찾아준 것이다.

이 영상을 확인한 경찰은 지난 1일 충북 청주에서 고씨를 긴급체포했다. 제주경찰은 지난 9일 브리핑을 통해 "한정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최종 기지국 신호를 중심으로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뒤늦게 고씨의 폭력적인 성향 등을 유가족으로부터 들었고 CCTV 영상에서 수상한 점이 포착돼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A씨가 시신유기를 하기 전에 범행을 밝힐 수 있었던 만큼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석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