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봉] 춘일억이백

5월이 문을 열었다. 세월이 빠름을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어느새 3일이다. 정말이지 아까운 봄날의 연속이다. 나무마다 신록의 완성을 향하여 속도를 더하고 있음이 못내 아쉽다. 부드러운 연두색이 뻣뻣한 녹색으로 변하는 게 반갑지 않다. 낙화시절 못지않게 유정해지는 때라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이 달 말까지는 봄의 연속이다. 지금 도시 근교의 과수원에는 복사꽃과 배꽃의 잔치가 볼만하고, 도시의 화단에는 철쭉꽃과 영산홍의 잔치가 아름답다. 이제 보라색 짙은 오동나무의 꽃 잔치도 있을 터이고 이팝나무의 하얀 꽃 잔치도 있을 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까시나무들이 벌이는 황홀한 향기 잔치의 대단원도 예정돼 있다.
봄날에는 정서치료법이 그럴듯해야 한다. 나의 정서치료법을 위한 처방전은 단순하다. 옛날에 읽었던 시를 읽으면서 그때의 정서를 돌이켜 다시 음미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몸으로는 아니되나마 마음으로는 청소년 시절로 돌아갈 수가 있다. 두보의 시 중에서 <춘일억이백(春日憶李白)>은 그런 비상한 힘을 나에게 발휘하고 있다.
백야시무적 白也詩無敵/ 표연사불군 飄然思不群/ 청신유개부 淸新庾開府/ 준일포참군 俊逸鮑參軍/ 위북춘천수 渭北春天樹/ 강동일모운 江東日暮雲/ 하시일준주 何時一樽酒/ 중여세논문 重與細論文. 시로는 이백을 당할 자 없으니/ 자연스러운 뜻이 무리 중에 뛰어나다/ 맑고 새로움은 유신(庾信)과 같고/ 뛰어나고 훌륭함은 포조(鮑照)와 같다/ 나는 위수 북쪽의 장안에서 봄 하늘아래 가로수 길을 걷고 있는데 / 형은 장강의 하류에서 해지는 때의 구름을 보고 있으리라/ 어느 때 다시 만나 한 동이 술 놓고서/ 함께 맞대고 시문을 자세히 논할 것인가.
이백과 두보는 친구였다. 그러나 그들의 교재 기간은 짧았다. 이백이 701년생이고 두보가 712 년생이니 열한 살이나 차이가 났다. 두보는 이백을 만나서는 존경했고 헤어져서는 그리워했다. 두 사람의 시를 비교해보면 아우의 정이 훨씬 더 깊다. 나에게도 지금 그런 분이 있는지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