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기부

돈, 명예, 권력…. 사람의 욕망을 표현할 때 꼭 쓰이는 말이다. 이 중, 돈은 항상 그 첫 번째에 등장한다. 명예, 권력, 돈이라고 말하면 왠지 어감이 이상하다. 그만큼 현 시대 사람들의 가치를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 돈. 오늘도 이것을 쫓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과 시간을 투자한다.
돈은 우리의 삶에서 매개체 역할을 한다. 돈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우리는 돈에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삶 속에서 돈은 절대 필요한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의 신분고하를 가늠하기에 이르렀다.
자고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정권도 돈 앞에서는 쩔쩔 맨다. 돈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산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품안에 꼭꼭 숨겨두고 소모되는 것을 싫어한다. 왜 그럴까.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희생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를 희생해서 얻은 게 돈이라면 한낱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돈이란 움켜쥐고만 있다고 질적으로 행복해 질 수는 없다. 사용할 줄 모르는 돈은 돈이 아니다. 내가 돈을 사용해야 하는 목적이 없다면 돈에 대한 가치가 없다.
평생을 수제비만 먹으면서, 폐지 수집으로 20년간 모은 돈 900만원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선뜻 기부한 80대 할머니가 있다. 이 할머니는 2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오전 7시면 리어카를 끌고 집을 나선 다음 폐지와 빈 병을 모아서 고물상에 판다. 폐지를 모아 판 수입은 기껏해야 3500원 정도, 운수가 좋을 때면 하루 4000원을 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할머니는 돈이 아까워 점심때면 밥을 사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매일 먹는 수제비도 사실 사치라고 말했다니, 이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사람이다. 물론 폐지를 모아 기부한 할머니는 한 둘이 아니다. 30년 동안 폐품을 팔아 모은 전 재산 5천만원을 사회에 기부한 할머니도 있다.
우리나라 기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할머니 기부자들. 1970년부터 현재까지 할머니 기부자들의 기부 건수는 약120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분들이 나눔을 실천하실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독특한 생활철학 때문일 것이다.
김밥을 팔아서, 떡장사를 해서 수억원을 기부하는 할머니. 삯바느질로 힘겹게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할머니. 시장에서 젓갈을 팔아서 수십억을 기부한 할머니.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어렵게 번 돈을 매달 꼬박꼬박 기부하는 우유배달 주부.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생계를 쪼개 장학금을 기탁하는 등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는 거의 할머니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라한 사글셋방에서 한겨울에도 전혀 난방도 하지 않고 살다가 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전 재산, 많게는 수십억원을 공익을 위해 쓰라며 사회에 돌려주고 간 할머니들. 말 그대로 ‘개미같이 벌었지만 거지같이 살다가 정승같이 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평생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으면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미담이 간혹 매스컴에 소개될 때면 선뜻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남을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의 즐거움, 자기 가족의 안락을 먼저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런데도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 사람들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면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자기 돈 100원도 아까워 그저 주지 않으려는 세상인데,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선뜻 내 줄 수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린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요즘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지만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우리 속담처럼 누구에게 어떻게 돈을 쓰느냐가 문제다. 자기가 번 돈이라고 지갑을 닫지 말고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면 그동안 몰랐던 ‘행복 바이러스’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한 학자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돈으로 편리한 집은 살 수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으며, 최상급의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최적의 잠은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어도 흐르는 시간은 살 수 없으며, 책은 얼마든지 살 수 있어도 결코 삶의 지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돈으로 지위는 살 수 있어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은 살 수 없으며, 쾌락은 살 수 있으나 마음속 깊은 곳의 기쁨은 살 수 없는 것이다.”

/신 영 규 신문학 전북지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