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땀 흘려 일하고 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다.  흐르는 구슬땀을 닦아내고 막걸리 한 사발을 벌떡, 벌떡 단숨에 들이키면, 등가죽에 들러붙었던 배 가죽이 펴지는 기분이다.
 막걸리를 마실 때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늘상 일터에서 돌아오면서 마을 입구에 있는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오셨다. 바쁘게 점심을 준비하면서도 시장기를 달래라고 아버지와 일꾼에게 술 한 주전자와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 오이와 장독대에서 한 수저 퍼온 된장을 술상위에 올려놓았다. 마루에 걸쳐 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스럽게 마시고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한입 물며 무더위를 이겨내시던 아버지 모습이 그립다. 어머니는 오후에 다시 일터로 나가시면서 새참으로 막걸리 한 주전자를 준비하셨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간한 ‘2014년 주류산업 실태조사’에 의하면 막걸리 생산업체의 67.8%가 수입쌀을 원료로 사용하였다. 매출액 상위 10개업체 원료곡 사용 비율은 수입쌀 비중이 82.3%이다. 수출업체 상위 10개회사의 수입쌀 사용 비중은 73.2%이다. 쌀 재고가 많아 고민인데도 우리의 오랜 전통주인 막걸리 원료까지 수입쌀이 차지하고 있다.
 막걸리 제조업체 825개중 426개소를 조사한 결과 100% 국내산 쌀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는 제조업체수는 5%인 21개소에 불과하다. 이런 실정인데도 막걸리가 우리 고유의 민속주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칠레에서 한국산 포도를 수입하여 생산한 와인을 칠레산 와인으로 판매한다면, 그 와인은 칠레산 와인일까, 한국산 와인일까.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수입한 쌀로 막걸리를 생산하였다면 ‘한국산 막걸리’라 할 수 있을까.
 막걸리는 한국 고유의 ‘전통주’이다. 그런데도 막걸리 제조업체에서 국내산 쌀 대신 수입쌀을 사용하는 이유는 원료 공급가격 때문이다. 정부에서 공급하고 있는 가공용쌀 40kg 고미(3년 보관) 가격은 64360원, 햅쌀 가격은 75000원 정도인데, 미국산 수입쌀은 21920원으로 국내산 고미 가격보다 66%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매년 40만 8700톤의 쌀을 외국으로부터 의무적으로 수입하여야 한다. 수입쌀 대부분은 떡, 면류, 쌀가루, 주정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수입쌀 처리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막걸리 병뚜껑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막걸리 병뚜껑은 녹색, 흰색, 검정색 3가지이다. 녹색 뚜껑은 ‘국내산 쌀’ 사용, 흰색 뚜껑은  ‘수입산 쌀’ 사용, 검정색 뚜껑은 ‘쌀은 국내산, 밀은 수입산’을 사용하였다는 표시이다.
 앞으로 쌀 막걸리의 고급화를 위해서는 가공용 쌀 품종개발, 계약재배 확대로 국내산 원료를 사용한 쌀 막걸리 제조업체가 늘어나야 한다.  
 오늘 저녁 친구들과 막걸리 골목을 찾아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기우리면서 한여름 장마철 무더위를 잊어보자.
 막걸리를 주문할 때, 사장님! “녹색 병뚜껑으로 1병 주세요”.       

성신상 / 농촌진흥청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