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최근 임명된 리수용 전 외상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5.31-6.2간 중국을 방문하였다.  리수용은 5.31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쑹 타오’에게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항구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6.1에는 시진핑 주석과도 면담하였다고 한다. 중국은 금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한층 강화된 대북제재에 확실하게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그간 대내외적으로 천명해왔었다. 그런 중국이 이번 양국간 고위급 교류를 통해서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을 묵인하고 중.북 양국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확인하면서 인도적 명목으로 대규모의 식량 지원을 협의하고 양국관계가 변함없이 긴밀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니 어찌된 영문인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올해 유엔의 대북제재조치에 따라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어 온 한국으로서는 ‘닭 쫓던 개’ 모양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예전과는 달리 시주석도 북한측에 비핵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신 ‘중국은 중.조 우호협력을 고도로 중시한다. 함께 노력해 이를 공고히 잘 발전시켜 나가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북한에 우호적인 중립적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그 속셈이 무언지 여러 추측을 낳고 있다. 이번 방문이 미국의 대중 포위정책에 대한 중국의 대응책의 하나라는 분석도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다. 한편, 6.6-7일에는 북경에서 미.중간 전략.경제대화 (외무.재무장관 회의)가 예정돼 있다고 하니 미.중간에 북핵문제에 대한 깊은 대화가 오갈 것도 확실하다.
지금 세계는 미국 주도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pax americana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에 도전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힘도 만만치 않다. 특히 중국의 빠른 부상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가장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미.중관계는 과거 미.소관계와는 크게 다른 측면이 있어 보인다. 중국은 소련과는 달리 경제분야에서는 시장경제체제를 받아 들이고 있고 정치체제도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이므로 이데오르기적 대립은 그리 첨예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던 중국은 그 굴욕을 극복하고 명예를 회복하여 다시 세계 강국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그 텃밭인 아시아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하고 한국과 동.서남아를 주변으로 하는 미국의 세력과 부딪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분단상태의 한반도는 이러한 미.중 세력 대결의 최첨단 전장터가 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소련 공산체제의 붕괴에서 촉발되었다고 본다. 양대 동맹국이었던 소련이 멸망하고 중국마저 한국과 수교하였으나 미국은 북한의 멸망이 임박하였다고 보고 그 체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만이 유일한 활로라는 인식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미.북간의 북 핵무기 개발중단 합의는 상호 불신속에 이뤄진 것으로서 양측 모두 이를 성실하게 이행할 의도는 처음부터 미약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1996년에 부시 정권이 들어선 후 미국으로서는 곧 멸망할 북한과 의미있는 관계를 수립할 의사가 없었고 북한은 어차피 처음부터 미국의 보장보다는 자체적인 핵무기가 가장 확실한 안보 수단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당시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합의체제에 끌어들여 한.일.러를 포함한 6자간 합의서를 만들었더라면 상호간의 불신이 많이 해소되었으리라는 아쉬움도 든다. 그러나 당시 어차피 북한체제가 곧 망하리라는 환상에 빠졌던 미국이나 한국으로서는 중.러를 끌어들이는 것을 불필요하게 보았을 것이다.
1994년의 미.북합의가 결국 수 년만에 무효화되고 북한이 본격적인 핵무기 생산에 들어가면서 2006년 이후 4차에 걸친 핵무기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그리고 진정한 핵보유국이 되는데 필요한 핵반격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잠수함발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음으로써 북핵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른 유엔 및 개별 국가 차원에서 수 많은 대북제재가 취해졌지만 중국이 이에 진심으로 동참하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그러한 제재는 북한으로서는 감내할 만한 것이 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에는 중국의 북한 핵무기 불용인 정책이 강화되는 조짐도 없지 않았으나 이번 리수용의 방중에서 보듯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당장 북한의 핵무장 해제를 요구하지는 않는 것이다라는 점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병효 / 주 노르웨이 대사, LA 총영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