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일을 하지 않은 일용직 인부가 일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수억원의 인건비를 가로챈 한국농어촌공사 직원들이 무더기로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은 농어촌공사의 인건비 편취가 조직 전반에 걸쳐 장기간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사업 쪼개기'로 수의계약을 맺고 돈을 받은 사실도 확인함에 따라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6~7월 농어촌공사를 대상으로 일용직 인건비 집행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같은 내용을 비롯해 총 27건의 감사결과를 시행했다고 17일 밝혔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결과와 관련해 검찰 수사요청과는 별개로 농어촌공사 비리 직원 26명 중 15명에 대해 파면(9명), 해임(1명), 정직(2명), 경징계 이상(3명) 등의 징계를 요구했다. 

징계시효가 경과한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를 위해 엄중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 인사자료로 활용토록 통보했다.

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는 농어촌공사 사장의 관리책임을 물어 주의를 촉구토록 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는 농어촌공사의 예산 부당 집행 사례가 다수 확인된 만큼 경영실적 평가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허위 인부' 내세워 인건비 3억9000만원 빼돌려

 농어촌공사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지하수영향조사, 농경지오염실태조사, 토취장조사 등의 수탁사업을 수행하고 있어서 일용직 채용이 많은 기관이다. 2011년부터 4년간 총 1만7394명의 일용직을 채용했으며 이들에게 지급된 인건비 규모만 29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현장 인부 채용 및 관리 체계는 매우 허술해 대부분 사업현장에서 실제로는 일을 하지 않은 허위 인부를 등록, 인건비를 편취한 사실이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농어촌공사 직원 20명은 지하수영향조사 등 111개 사업에서 허위 인부 274명의 인건비 3억9000여만원을 빼돌렸다.

일례로 본사 과장 A씨와 차장 B씨는 허위 인부 8명을 등록해 인건비 8263만원이 인부들의 계좌로 지급되도록 한 뒤 이들에게 통장 사용대가로 1273만원을 주고 각각 4771만원, 2219만원씩을 돌려받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

경북지역본부 7급 직원 C씨는 수영동호회에서 알게 된 지인 등 8명을 허위 인부로 내세워 6051만원의 인건비를 지급하고, 통장 사용대가로 1063만원을 준 뒤 4988만원을 빼돌렸다.

감사원은 인건비 편취 금액이 500만원 이상인 17명에 대해 지난해 8월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C씨는 구속돼 1심에서 사기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나머지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

감사원은 또 경남 및 충남지역본부에서 79개 수탁사업을 계약절차도 없이 업체에 재위탁하고, 사업수행대가로 263명의 허위 인부를 앞세워 인건비 7억2000만원을 빼돌린 사례도 확인해 검찰에 수사자료를 제공했다.

◇사업 쪼개기로 수의계약…거액 금품수수

 감사원은 농어촌공사가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총 776건의 지하수영향조사 사업을 발주하는 과정에서 총 105억원 규모, 657건의 사업을 2000만원 이하로 분할해 특정업체와 수의계약한 사실도 확인했다.

지하수영향조사 사업은 권역별로 경쟁입찰 발주가 가능한데도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수의계약 요건인 '2000만원 이하'로 사업을 쪼갠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직원이 거액의 대가를 수수한 사례도 적발됐다. 

충남지역본부 차장 D씨는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전 동료와 2011년 업체를 설립한 후 동료직원, 지자체 담당자 등에 부탁해 해당 업체의 수주를 도와주는 방법으로 4년간 162건(16억여원)의 사업을 따냈다. D씨는 사업수익금 명목으로 2억9000여만원을 받아 유흥비와 아파트 분양대금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납해야 할 사업비 잔액을 개인적으로 취득한 사례도 적발됐다. 경기지역본부 차장 E씨는 2014년 1월 사업이 완료된 6억9000여만원 규모의 저수지 개·보수사업 정산업무를 처리하면서 업체가 집행하지 않은 일용직 사회보험료 2000만원을 차명계좌로 돌려받은 뒤 유흥비 등에 썼다.

◇내부통제시스템 미비…자체감사실도 수수방관

 농어촌공사에 오랜 기간 조직적 비리가 만연했던 것은 이를 차단할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인부 관리·감독과 관련된 권한이 사업부서 현장책임자에게 일임돼 평소 친분이 있는 대학후배나 친인척, 지인 등을 아무런 통제 없이 허위 인부로 채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또 회계부서는 증빙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현장책임자가 보낸 청구서만 믿고 계좌로 인건비를 지급하는 바람에 이른바 '통장 대여 아르바이트생'이나 부하직원, 가족 명의 계좌로 인건비를 지급받아 빼돌리는 일이 횡행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내부통제 기능을 수행해야 할 농어촌공사 자체감사실은 지난 2014년 6월 인건비 부당 취득과 관련한 제보가 접수됐는데도 개인적 일탈행동으로 치부하고 실태조사 없이 방치하는 등 조직적 비리를 수수방관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이성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