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아름다운 인물로 위(衛)나라 영공의 총애를 받아 대부(大夫)가 되었습니다.

그런 미자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늙은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가 거짓말을 꾸며 임금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를 보러갔습니다. 그 당시 국법에 따르면 임금의 허락 없이 몰래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월(?)은 고대 중국에서 시행되던 다섯 가지 형벌(五刑) 가운데 하나로,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고도 하고, 발목을 잘라버리는 형벌이라고도 하는데, 미자하는 그런 형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의 수레를 몰고 갔습니다.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순전히 임금의 총애를 믿고 제멋대로 임금의 수레를 몰고 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화를 내기커녕 오히려 미자하의 효심을 칭찬하는 겁니다. “미자하는 진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미자하의 효성이 지극해서 죄를 묻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영공을 따라 임금의 과수원을 거니는데, 복숭아가 너무나 맛있게 보이는 겁니다. 미자하는 자기도 모르게 복숭아 하나를 따 먹으니 그 맛이 너무나 달고 좋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먹던 복숭아 반쪽을 임금에게 바치면서 말했습니다. “전하, 이 복숭아 맛이 너무 좋습니다. 저 혼자 먹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전하께 드리오니 한 번 맛보소서.”

참으로 불경스런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새로 딴 복숭아도 아니고, 자기가 먹던 복숭아 반쪽을 임금에게 먹게 하는 신하가 어디 있습니까? 아마 조선시대 연산군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을 겁니다. 그런데도 영공은 미자하를 칭찬하는 겁니다. “미자하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를 제가 다 먹지 않고 나에게 먹여주는 걸 보면.” 불경스런 짓이 아니라 임금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다는 칭찬입니다. 

이렇게 미자하에 대한 영공의 총애는 지극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미모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달도 차면 기운다고, 세월이 흐르면서 미자하의 아름다운 모습도 조금씩 빛을 잃어갔고, 그에 따라 왕의 총애도 곱절로 엷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게 되자, 그렇게 너그럽던 임금이 노발대발 화를 내는 겁니다. 지난날에 있었던 일까지 들먹이면서 말입니다. “이 놈은 언젠가 거짓말을 해서 내 수레를 몰래 탄 일이 있다.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 입에 넣은 적도 있다. 아주 몹쓸 놈이니 내처라.” 

전에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칭찬하던 일을 가지고 이제는 아주 못된 짓이라고 꾸짖으며 벌을 주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어떻게 똑같은 일이 어떤 때는 칭찬받고 어떤 때는 비난받는 걸까요? 이런 물음에 대해 한비자(韓非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용은 아주 무서운 짐승이지만, 그것을 길들여서 익숙해지면 올라타서 놀 수 있다. 다만 용의 목 아래에 지름이 한 자(尺) 되는 역린(逆鱗)이 있는데, 그것을 건드리면 절대 안 된다. 만일 그것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용이 반드시 그를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역린(逆鱗)은 용의 턱 밑에 거꾸로(逆) 난 비늘(鱗)로,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그것을 건드린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린다고 하는데, 한비자(韓非子)는 임금한테도 그와 똑같은 역린이 있다고 합니다. 임금을 설득하려는 사람은 그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 자기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요즘말로 하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린이 대통령한테만 있을까요? 우리 같은 민초들에게는 과연 그런 역린이 없을까요? 새해가 되자마자 정치의 계절이라며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그대들은 누구의 역린을 무서워하는가?

김용웅/전주대학교 씨름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