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민간 금융회사의 상품 출시와 수수료 결정 등에 관행적으로 개입해 자율성을 해치고 각종 비용분담도 부당하게 요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지난 6~7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을 대상으로 금융규제 운영 및 개선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같은 내용을 비롯해 총 24건의 감사결과를 시행했다고 17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융위와 금감원은 정책목표 달성이나 정부정책 홍보를 위해 충분한 수요조사나 관계 기관과의 협의도 없이 민간 금융사가 정책금융상품을 출시토록 했다. 부실한 정책상품 출시에 따른 실적부진은 금융사가 떠안았다.

대표적으로 금융위가 2013년 5월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목표로 16개 은행이 출시토록 한 '채무조정적격대출'은 올해 5월말까지 취급실적이 37억원에 그쳤다. 상품구조가 시중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프리워크아웃대출'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금리는 오히려 더 높게 유지된 탓이다.

금감원이 금융위와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같은해 3월 7개 은행에 출시토록 한 '월세대출'의 경우도 올해 5월말까지 2억원의 취급실적만 기록하고 있다. 은행과 집주인간 협의 등으로 절차가 복잡하고 세입자의 일시상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또 금융사가 정책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도록 실적평가와 사후점검을 통해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금융위는 중소기업에 자금지원과 금리우대, 각종 수수료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집중호우 피해복구 지원대출' 등 4건의 정책상품을 출시토록 한 뒤 은행별 지원실적을 점검했다. 금감원의 경우 담보력이 낮은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지원을 목표로 한 '동산담보대출' 상품을 은행권에 출시하도록 요청하면서 목표량을 부여하고 매월 실적을 보고해 경영평가에 반영토록 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부과하는 수수료 결정에도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개입했다. 감사원이 1999년 이후 금감원의 은행 수수료에 대한 지도·감독 실태를 점검한 결과 총 12차례에 걸쳐 수수료 인하나 폐지 등의 결정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은행별 수수료가 획일화되고 서비스 차별화 유인이 줄어드는 등 자율적인 경쟁촉진이 제한돼 은행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정책적 필요에 따라 은행의 수수료 부과체계를 일정수준 규제하고자 한다면 그 법적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부당한 비용분담 요구 사례도 적발됐다. 금융위와 금감원으로부터 각종 검사와 감독, 제재를 받는 금융사와 관련 협회 입장에서는 홍보나 행사비용 등의 분담을 요청받을 경우 이를 거절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일례로 금융위는 2013년 6월 '금융관행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관련 비용 1억5000만원을 권역별 금융협회에 떠넘겼으며 같은해 8월 금감원은 '전자금융사기 예방서비스 전면시행' 관련 홍보비용 8억5000만원을 은행과 증권사 등이 부담토록 했다.

감사원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처럼 금융위와 금감원이 금융 관련 협회와 금융사 등에 분담토록 한 사업비용이 41억여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에 대한 민간 금융사의 과도한 업무보고서 제출부담을 완화한다는 정책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었다.

감사원이 2013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금감원이 은행과 보험사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업무보고서 1576개를 조사한 결과 조회수가 50회 이하인 보고서가 661개에 달했으며 23개 보고서는 최근 2년간 조회실적이 전무했다.

또 2013년 11월 이후 폐지된 업무보고서는 71개인데 반해 신설된 보고서는 155개로 오히려 금융사의 보고서 작성부담이 가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위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금융규제 개혁방안'의 주요과제인 제재시효 도입, 비공식 행정지도 정비 등도 계획대로 추진하지 않거나 금융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등 개혁과제에 대한 사후관리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를 신설·강화했을 때에는 해당 규제를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해야 하는데도 금융위와 금감원이 141건의 규제 등록을 누락해 해당 규제에 대한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거나 규제폐지 정비대상 검토에서 제외될 우려도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감사원은 은행의 유가증권 투자 규제, 증권금융회사의 사채발행한도 규제 등 현재의 금융환경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규제가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