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리던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눈발을 헤치고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나 '개헌 논의'를 주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의도에는 개헌 이슈가 다시 불붙고 있다.

개헌 논의의 중심에는 역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있다. 친이계 의원들의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26일 정종철 서울대 법학과 교수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개헌 공론화 작업에 착수했다.

'함께 내일로'의 안경률 대표는 "새로운 집을 지으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듯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선진화된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개헌 논의는 정치권에서 법을 새로 만들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데 앞장 서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청강사였던 정 교수는 '21세기 국가발전 전략을 위한 바람직한 권력구조'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장단점과 향후 권력분립형태의 대안 등을 제시했다.

이날 간담회에 이어 친이계 중에서도 친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이군현 의원도 오는 27일 국회에서 '동아시아 중심 시대의 국가비전을 위한 개헌 토론회'를 열고 개헌 군불때기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앞서 한나라당은 지난 23일 이 대통령과의 '안가 회동' 이튿날인 24일, 당초 25일로 예정됐던 개헌 의원총회(의총)를 설 연휴 이후로 연기했다.

표면적인 연기 이유는 대다수 의원들이 의정활동 차 해외로 나갔기 때문이라지만, 의총을 열어 개헌 분위기로 몰아가기에는 '작업'이 아직 덜 끝났다는 점이 연기의 주 배경이란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친이계에 반해, 친박(친박근혜)계는 "정략적 의도"가 있다며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친박계 한선교 의원은 친이계 의원들이 개헌 모임을 하던 그 시간,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밀어붙인다는 힘을 느끼는데 분명히 정략적인 생각이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제가 우리나라에는 통하지 않는 권력구조다'라는 것을 전제로 심각한 논의를 한 뒤 그 밖에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있는데 곧바로 분권형으로 가자는 건 급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 의원은 또 설 이후로 연기된 개헌 의총과 관련, "대부분의 의원들이 개헌에 대해 찬성보다는 찬성 아닌 쪽이다"며 "사흘에 걸쳐 의총을 한다는 것 자체도 무리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앞서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도 헌정회 신년하례식에서 개헌을 주장한 이재오 특임장관을 공개 비판하는 등 친이계 중심의 개헌 논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지만, 최근에는 개헌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아예 피하고 있다.

친박계 중진인 홍사덕 의원도 "더 이상 (의총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의총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야당은 "이제는 지겹다"며 무관심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개헌 논의를 하라고 지시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대통령은 국민을 편안하게 해야지 불안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열었다.

또 "권력 분산을 논하기 전에 바지 국회의장, 바지총리, 바지 감사원장 만들기부터 중지해야한다"며 "이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통해 정권 연장을 획책하지 말고 구제역 퇴치와 물가 잡기, 전세값 안정에 먼저 전념할 것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이 대통령의 개헌 논의 당부가 알려진 지난 24일 "개헌을 하려면 임기 초에 했어야 했다. 실기(失期)했다"고 했고,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한나라당 내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친박계와 야당 측 반응들을 종합하면 개헌 논의가 재점화되기까지는 아직 꽤 많은 불쏘시게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권 주류인 친이계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개헌 논란의 확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