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소낙비가 내리는 날에는 아랫마을 면장네 방죽을 찾았다.

아랫마을에는 김면장이 살고 있는 기와집이 있었고 근동 땅이 그 집의 소유로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방죽이 있는데 그 안에 개구리밥, 연, 방동사니, 가래, 봇풀등이 가득차 있고 개구리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장대 같은 여름 작달비가  그치고 나면 어디에서 나왔는지 길가에는 살이 노랗게 오른 미꾸라지가 나와 꿈틀거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내 또래 아이들이 몰려 나와 방죽가에서 연잎을 따서  우산처럼 머리에 쓰고 옷이 젖어 오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연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연밥이 익어 가는데  그것을 따 먹기 위해 한발 한발 들어가다 미끄러져 온몸이 빠져 버리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언제 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면장 댁 연방죽은 경지정리가 되어 없어지고 그 집 사람들도 도시로 이사 가버려서 이제는 달랑 두 집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내 나이 오십이 훌쩍 넘은 지금도 6월이 되어 한여름 작달비가  내리는 날에는 가끔 그 방죽이 슬그머니 생각이 나고 그 시절 연밥이 그립다.

다행이도 고창 무장읍성 안에 어느날 갑자기 연꽃이 피어 그 옛날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내 어린 날의 그리움으로 시간을 돌려 주고 있다.

1872년도에 만들어진 무장읍성 채색지도에는 연지라고 표시되어 주변에는 수양버들이 그려져 있다. 

지도에 나와 있던 읍성이 1910년 읍성철폐령에 의해 폐성이 되면서 초등학교가 들어섰는데 학교 건물로 사용 되었던 동헌 앞 연지는 흙으로 메워 학교 운동장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무장읍성 복원을 위해 성 밖으로 옮겨가고  발굴을 하고 나니 물이 자연스레 채워져 첫해에는 연꽃 몇 송이가 올라오고 그 다음 해에는 봇풀이며 부들 개구리밥 등 수생식물이 꽉 차더니 물새가 날아와 놀기 시작했다.

100년이 흐른 세월 속에서도 땅속에 묻혀 있던 씨앗에서 생명이 올라오는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내 어릴 적 면장 댁 논에서도 생명의 씨앗이 올라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설레어 진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할 무렵 여름장맛비가 내리면 어릴 적 함께 놀았던 친구들을 무장읍성에 초대하여 정자에 앉아 연꽃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 사발 앞에 놓고 면장네 연방죽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무장읍성에 핀 연꽃을 바라보며

정명숙 고창군청 문화관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