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처세중에 가장 힘든 일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바보인척 살아가는 일이다. 처세술이란 세상일 또는 사람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수단과 방법을 구사하는 기술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들과 관계맺기를 잘하는 요령이다. 고전(古典)에서 ‘승리하는 바보처세술’에 대한 얘기를 모아 보았다.
손자(孫子)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중에 가장 힘든것이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바보인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진정한 승리자는 상대방을 굴복시킨 자가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긴 자다. 자신의 자존심을 희생할 줄 아는 자가 현명한 최후의 승리자가 될수 있다.
노자(老子)도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고, 충만한 것은 텅 빈 것같이 보인다. 뛰어난 기교는 서툴게 보이며, 뛰어난 웅변은 눌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효용은 다함이 없다.’고 했다.
한 선비가 장자(莊子)를 찾았다. 그는 장자의 사상에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옳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현실세계는 쓸모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온통 구부러지고 제 멋대로 자란 나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수는 저런 나무를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이에 장자가 말했다.
‘당신말도 일리가 있소만 한번 거꾸로 생각해 보시오. 저 나무가 오랜 세월동안 잘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볼품없고 구부러졌기 때문이 아니겠소.’ 이에 선비는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덩치만 컸지 아무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장자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 세상에 쓸모없는게 있을리 있겠소. 지금 내리쬐고 있는 태양 때문에 당신 머리가 뜨겁다면 당장 나무그늘로 들어가지 않겠소.’ 선비는 더이상 말을 못했다. 어리석게 처세하는 바보는 당장은 낙오자여도 세월이 흐른후에는 승자로 남는다. 우리속담에 ‘쓸모없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딱 맞다.
저자정판교의 바보경에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있다. 어수룩한척하기는 매우어렵다는 뜻이다. 난세에 자신을 지키는 처세술은 바보인척 자기를 한껏 낮출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암시다.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면 화를 당할 것이기에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그저 바보인척 세상을 살아가라는 인생철학이 담긴 책이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박사는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름다운 일화를 많이 남겼다. ‘걸인이 돈을 구걸하자 현찰이 없어 수표를 줬다는 얘기, 병원비를 못내 발이 묶인 환자에게 몰래 도망가라고 병원문을 열어준 일, 며느리가 혼수로 가져온 이불을 고학생에게 갖다 주라고 한 일, 책도둑에게 책 대신 돈을 가지고 도망치라 했던 일들이 지금까지 전해온다. 그외에 하나 더 있다. 어느 해 설날, 장박사가 아끼던 제자가 세배를 올리자 덕담을 했다. ‘금년엔 날 닮아서 잘살아보게.’ 그러자 제자가 재치있게 말을 받았다.
‘선생님처럼 살면 바보 되게요.’ 그러자 장박사는 웃으면서 ‘그렇지, 바보소리 들으면 자넨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줄 아는가.’라고 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 바보로 살다가 선종했다. 어수룩한 자화상에 ‘바보야’로 이름붙이고 ‘안다고 나대고 대접만 받으려고 한 내가 바로 바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다. 누가 칭찬이라도 하면 ‘아이고, 날 칭찬하지 마세요. 살아서 받을 칭찬을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게 없어요.’라고 했다.
‘바보 존’의 저자 차동엽신부는 ‘당신 안에 숨겨진 바보를 찾으라. 밑지고 사는 것이 이기는 지름길이고, 훌륭한 바보들의 힘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했다.
지금 우리사회는 바보들이 필요하다. 온갖 얄팍한 처세술을 부리며 살아가기보다는 그저 바보처럼 살아가는 사람, 내 욕심만을 위해 상대방에게 피해주기보다 가진 것 없어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자족하는 사람, 남에게 도움을 주고 바보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처럼 바보스럽게 사는 사람이 진정 지혜있는 사람이며 최후의 승리자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지혜로우나 어수룩한척하고,기교가 뛰어나나 서투른척하고, 곧으나 휘어진 척하고, 전진하나 후퇴하는척하는 지혜가 바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바보의 처세술이 아니겠는가.
김재춘 / 전 완주동양초등학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