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만해도 일반 가정에 냉장고가 거의 보급되지 못했다. 물론 전기밥통도 없었다. 요즘이야 김치냉장고까지 보편화된 세상이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음식을 보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음식을 보관하는 수단으로 소쿠리가 애용됐다.

우리 어머니도 음식을 소쿠리에 담아 처마밑 서늘한 곳에 매달아 두곤하셨다. 소쿠리는 먹고 남은 밥을 모아두는 아주 요긴한 그릇이었다. 밥통이나 냉장고 대용이었다. 그러나 이 소쿠리는 고온다습한 날씨에선 효용성이 높지 못했다. 아무리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해도 음식이 상하는 경우가 잦았다.

소쿠리가 애용되던 시절은 소위 '보릿고개' 절기여서 먹고사는 형편도 곤궁했다. 그래서 여름철이면 물 말은 보리밥에다 풋고추와 된장으로 한끼를 때우기가 예사였다. 반찬이 옹색하다보니 밥에다 물을 말아서 먹었다.

어느 무더운 날 점심때로 기억된다. 아들에게는 부엌에서 불을 때 밥을 지어 주시더니 어머니는 소쿠리에 있던 찬밥을 드셨다. 어머니는 여느 때와 달랐다. 밥그릇이 아닌 큰 양푼에다 밥을 덜어 내더니 여러차례 물로 헹군 다음 드시는 것이었다. 날씨가 무더우니 찬물로 헹궈서 시원하게 드시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몇해가 지난 뒤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소쿠리에 있던 밥이 쉬었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물로 씻어서 드셨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콧날이 시큰하다. 생각해보니 그날만 헹궈서 드신 것도 아니었다. 그처럼 양푼을 수차례나 사용하시던 기억이 밀려든다. 요즘같으면 식중독이다 뭐다해서 난리법석이 날 쉰밥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런 것도 모른채 반찬투정을 해대던 철없는 자식에게 계란후라이를 해주셨던 어머니다.

계란후라이라고 하니 그게 뭐 대단한 반찬이냐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당시 계란은 지금처럼 양계장에서 대량생산을 해내는 방식이 아니다. 횃대가 질러진 닭장에서 몇 마리씩 기른 암탉이 가끔 생산하는 유정란이다. 암탉은 계란을 매일 낳는 것도 아니어서 하나씩 건진 계란은 가정의 귀중한 수입원이었다.

때문에 계란은 식용보다는 10개들이 짚 꾸러미로 묶어 시장에 내다 팔아 가용돈을 만드는데 요긴하게 사용됐다. 계란은 또한 언제든지 낱개로도 가게에서 매입해주기 때문에 현금과도 같았다. 그래서 계란 1개를 손에 쥐면 공책도 사고 눈깔사탕도 사먹을 수 있었다. 요즘의 문화상품권과도 같은 효력을 지녔다.

그렇게 소중한 계란을 반찬으로 식용한다는 것은 시골의 보통 가정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기 드문 경우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선뜻 계란을 아들 반찬으로 내놓으셨다. 이제 어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겼다. 주름 가득한 모습에다 잔병치레에 시달리신다. 그 주름의 절반은 나 때문에 생겼다.
어버이날인데도 지척에 계신 부모님께 그 흔한 카네이션조차 달아드리지 못한 자괴감이 밀려온다. 물론 어머니는 바라지도 않으셨을 게다. 이번 주말엔 아들 녀석 앞세우고 꼭 찾아뵈어야겠다.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제대로 표현도 못하지만.

이백수/본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