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비자들은 ‘인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겉으로는 삶을 긍정적으로 살자는 태도처럼 들리지만, 이 문장이 소비의 구실로 쓰일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광고는 이를 교묘히 자극한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 “평생 한 번의 기회”, “오늘의 나에게 선물하세요” 같은 문구들은 소비자의 감정을 흔들어놓는다. 기업들은 사람들의 ‘지금 이 순간’이라는 감정적 욕망을 정확히 겨냥해, 합리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건 인생에 단 한 번뿐이야.”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까, 나에게 주는 선물로 괜찮잖아.”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지갑을 연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표현은 언뜻 자기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소비를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교묘한 언어다. 선물이란 본래 타인을 위한 행위지만, 이때의 ‘나에게 주는 선물’은 감정적 소비를 포장하는 자기합리화의 장치가 된다.
경제학적으로 이는 감정소비(emotional consumption)와 현재편향(present bias), 그리고 비교소비(comparative consumption)가 결합된 전형적인 형태다.
사람은 현재의 만족을 과대평가하고, 미래의 부담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는 소비욕을 더욱 자극한다.
SNS 속 ‘남의 삶’은 화려하게 편집되어 있고, 그 안의 이미지는 현실보다 훨씬 빛나 보인다. 남이 다녀온 해외여행, 새로 장만한 명품 가방, 멋진 저녁 식사 한 장의 사진이 나의 소비 욕망을 자극한다.
그 결과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소비’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명분과 결합하며, 지출은 감정의 폭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소비의 대가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점이다. 순간의 만족은 달콤하지만, 그것이 남긴 것은 대개 카드 명세서와 공허함이다.
인생의 단 한 번뿐이라는 말은 사실 모든 순간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에 특별한 의미를 덧붙이고, 그 순간만큼은 과도한 소비를 정당화하려 한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마케팅의 산물이며, 실제로는 대부분의 기회가 반복된다. 다음 세일 시즌에도, 다음 휴가철에도, 우리는 비슷한 유혹을 다시 마주한다.
기업은 이런 인간 심리를 정확히 계산한다. 희소성과 감정의 결합은 강력한 구매 동기다. 한정판, 단 하루 할인, 특별 구성 세트 같은 마케팅 전략은 인간의 불안과 욕망을 동시에 자극한다.
여기에 ‘수고한 나에게 선물하세요’라는 문구를 덧붙이면, 소비는 도덕적 면죄부를 얻는다. 소비자는 마치 자신을 돌보는 행위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감정의 틈을 파고든 상업적 유혹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개인의 재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기적인 쾌락 소비가 반복되면 가계부채가 누적되고, 장기적인 소비 여력이 감소한다.
신용카드나 할부는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끌어와 사용하는 도구다. 따라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로 반복되는 감정소비는 미래의 경제적 자유를 갉아먹는다. 현재의 위로가 내일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나에게 주는 선물’ 소비는 자기보상심리(self-reward mechanism)의 전형이다.
인간은 스트레스나 피로를 느낄 때 즉각적인 보상을 통해 감정을 회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 보상이 ‘물질적 소비’로만 표현될 때 생긴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쇼핑을 하고, 지친 하루를 위로하기 위해 비싼 외식을 하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이유로 고가의 물건을 산다. 이렇게 감정적 보상이 반복되면, 소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부채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정한 ‘나에게 주는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한 휴식일 수도 있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배움이나 새로운 경험일 수도 있다.
소비로 순간의 감정을 달래는 것은 일시적 쾌락에 불과하지만, 자기계발과 내면의 성장에 투자하는 것은 장기적인 만족과 안정감을 가져온다. 경제적으로도 이런 소비는 자산이 아닌 ‘자기 가치’를 높이는 투자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 의미를 순간의 소비로 소모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단 한 번뿐이기에, 오히려 더 현명하고 지속 가능한 선택이 필요하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 진정한 가치로 이어지려면,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위로나 상업적 유혹이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결국 경제적 자유는 절제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지출하는 대신, 미래의 나를 위해 저축하고, 경험을 쌓고, 배움을 이어가는 것이 더 큰 보상이 된다.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면, 그 한 번을 카드빚과 후회로 채우기보다, 진짜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물’이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