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그 거울은 늘 정직하지 않다. 특히 국민의 소득과 자산을 측정할 때, 우리가 흔히 접하는 ‘평균’이라는 숫자는 현실을 오도하기 쉽다.
한국 사회에서 상위 10%가 소득과 자산의 상당 부분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은 평균치를 끌어올려, 중하위 계층이 체감하는 삶의 질과 괴리된 이른바 ‘가짜평균’을 형성한다. 이 착시 효과는 정책 수립과 사회 인식에 왜곡을 불러오며, 불평등을 가리는 가림막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선 소득 분포를 보자. 통계청과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자산의 경우는 그 격차가 더 심각하다. 한국은행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평균을 내면 숫자는 자연스럽게 상위 계층의 몫에 의해 끌어올려진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이 실제로 경험하는 생활 수준은 이 평균과는 거리가 멀다. 평균 소득이 예컨대 400만 원이라고 발표되었을 때, 상당수 국민은 “나는 그 절반도 못 버는데 왜 평균은 이렇게 높은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바로 이것이 가짜평균의 정체다.
평균이 현실을 왜곡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평균은 단순히 모든 값을 더해 인원수로 나눈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값이 극단적으로 높은 일부가 전체 평균을 끌어올린다.
반대로 중앙값은 소득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값으로, 다수 국민의 생활수준을 더 잘 반영한다. 실제로 한국의 가계소득 중앙값은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며, 이는 국민 다수가 평균 소득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정부나 언론이 평균치를 더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균’이라는 숫자가 주는 인상은 마치 국민 전체가 일정 수준의 부를 공유하고 있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짜평균의 효과는 정책 논의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복지정책이나 최저임금 조정 논의에서 평균 소득이 준거점으로 사용될 경우, 정책의 수혜 대상은 실제로 어려움에 처한 집단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평균 소득이 400만 원이라면, 정부는 이를 기준으로 ‘중산층’을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보다 적은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정책 설계 자체가 비현실적인 출발선 위에서 진행되는 셈이다. 이는 결국 복지 사각지대를 넓히고 사회적 불만을 증폭시킨다.
또한 가짜평균은 사회 인식을 왜곡한다. 국민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기준은 통계와 사회 담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평균 소득이 높다고 들으면, 개인은 자신의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느끼고, 이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생활수준이 나아지지 않았는데도 ‘국가 전체 소득이 올랐다’는 보도가 잦아지면 국민은 체감과 달리 자신이 더 뒤처졌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가짜평균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은 개인의 삶에 불필요한 불안과 위축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통계의 활용 방식에서 중앙값과 분포 정보를 함께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 평균만으로 국민의 삶을 설명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상위 10%와 하위 10% 간의 격차, 소득 5분위 간의 상대적 비율을 명확히 보여주는 통계가 더 자주 활용되어야 한다.
둘째, 언론 역시 평균치 보도에 신중해야 한다.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통계가 불일치할 때 불신이 싹트고, 이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해석하는 것은 언론의 본분이다.
나아가 정책 입안자들은 ‘가짜평균’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생활 실태를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특히 주거, 교육, 의료와 같은 기본적 삶의 조건은 평균이 아니라 중간값 이하 계층의 상황에 맞추어 지원이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복지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우리는 숫자에 속지 말아야 한다. 평균이라는 한 줄기 수치가 보여주는 세계는 때로 현실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가짜평균은 불평등을 가리고, 체감 빈곤을 확대하며, 사회적 불신을 심화시킨다. 이제는 평균의 마술에 기대기보다 분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통계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길이자, 불평등 사회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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