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제 단순히 ‘K-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문화 강국을 넘어,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약 325달러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280달러, 그리고 명품 소비 규모에서 가장 큰 손으로 꼽히는 중국의 55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단순한 시장 규모를 넘어 인구 대비 소비 성향에서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럭셔리 친화적’인 사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소비 패턴이 특정 계층이나 나이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거 명품은 부유층 혹은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한국에서는 20~30대 젊은 층은 물론 10대 청소년들까지 명품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MZ세대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명품을 택하며, 소셜미디어와 결합된 ‘보여주기 소비’ 문화는 이 같은 경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명품 가방이나 신발, 액세서리는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한 상징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소비 성향은 경제 구조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부동산이나 자산 증식 수단이 어려워진 사회에서 젊은 층이 ‘지금 이 순간의 만족’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당장의 즐거움과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쪽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명품 소비는 대체 여가 소비로 급부상했고, 이는 팬데믹 이후에도 일상화된 소비 패턴으로 굳어졌다.

다만 이 같은 ‘세계 1위 타이틀’이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명품 소비는 사회적 양극화와 박탈감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소득 수준에 따라 명품 접근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또래 집단 내 비교와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는 명품 소유 여부가 곧 사회적 지위나 자기 가치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는 특히 청소년층에게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위험성이 있다. 부모의 지원이나 무리한 지출로 명품을 소유하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세계 인구 대비 규모는 작지만 소비력과 충성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게 ‘전략적 1순위’ 고객군으로 꼽힌다. 

실제로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서울과 부산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한국 시장만을 겨냥한 한정판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한국 소비자들이 보여주는 높은 브랜드 충성도와 빠른 트렌드 수용성 덕분이다.

향후 전망을 보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 1위 기록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총량 면에서는 이미 세계 최대의 명품 소비국으로 부상했지만, 인구 규모가 워낙 커 1인당 지표에서는 한국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 

반면 한국은 높은 도시화율, 디지털 친화적 환경, 소셜미디어 영향력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명품 소비의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이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명품 소비가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넘어 사회적 압박과 비교 문화 속에서 강제되는 순간, 이는 단순한 소비 행위를 넘어 사회적 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명품을 ‘성공의 기준’ 혹은 ‘자존감의 근거’로 삼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세대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세계 1위라는 ‘화려한 타이틀’ 이면에 숨어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명품 소비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이 되거나, 무리한 지출과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명품을 소비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지, ‘타인의 시선 때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 세계 럭셔리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브랜드와 마케팅 전략의 무대 위에서 한국 소비자는 강력한 ‘큰 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진정한 부는 소비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이면의 가치와 균형에서 비롯된다. 한국이 ‘명품 소비 1위’라는 기록을 넘어, 건강한 소비 문화를 만들어 가는 길에 더 많은 지혜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