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도라고 전 세계에서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병원의 행태를 보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병원 제도를 바짝 뒤쫒아 가는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어 몇 자 적어본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의료 현장은 한편으로는 큰 발전을 이루고 친절하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환자의 권리와 경제적 부담을 무시한 현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2024년 의료 인력 매년 2천 명 증원이라는 의료 개혁 정책을 내세우며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고 발표한 후 의정 갈등의 여파가 심각하게 나타났다.
많은 1차 진료 기관의 젊은 의사들이 파업에 동참하여 환자들이 제대로 처치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등 위험에 노출된 바 있다.
이후 영업비용의 손실 복구를 위한 목적인지는 모르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눈높이를 외면한 과도한 비용 청구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나의 가족에게도 그 민낯은 생생히 드러났다. 누이동생이 전북의 한 종합병원에서 유방암 절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과정에서 유방 보형 관련 비용 4백만 원과 나머지 비용 200여만 원 합계 600여만 원이 비급여로 사전에 환자 동의 없이 결정되는 일이 있었다. 결국 나중에야 동의서를 써 주었지만, 이미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은 막대했다.
이를 문제 삼으려는 오빠의 권유에 여동생은 앞으로 같은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되는데 무례한 가족의 행위로 인해 자신의 치료에 지장을 받고 싶지 않다며 조용히 마무리하겠다는 여동생의 속 깊은 말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둘째 아들이 휴일에 갑작스레 척추디스크로 인하여 운신을 못해 119 구급차에 실려 긴급으로 중형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기에 부랴부랴 달려가 보았다.
입원 후 MRI 촬영 결과 다행스럽게도 수술이 필요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수술 없이 치료를 위해 환자의 동의를 받기는 하였지만 200여만 원에 달하는 주사제를 비급여로 사용하며 청구했다.
의료급여 적용은 물론 없었고, 환자의 호주머니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사례가 아니라, 병원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어 자행되는가?
첫째, 의료기관의 수익 구조가 환자 중심이 아니라 병원 운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비급여 항목은 병원 입장에서는 재정 확보 수단이지만, 환자에게는 불가피한 커다란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둘째, 환자의 동의 절차가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환자가 충분히 설명을 듣고 선택할 권리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동의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환자 권리의 심각한 침해가 될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여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병원이, 오히려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의 의료 인력 증원 정책도 의미가 있지만, 의료 질 향상만으로는 환자 보호가 충분치 않다. 제도적 장치와 윤리적 기준, 비용 투명성이 함께 강화되어 서민도 부담 없이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병원을 감독하는 감독기관이 너무 영리를 취하고자 하는 병원에 대한 철저한 감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비급여 항목에 대한 사전 설명과 동의 절차를 철저히 하고,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만 한다.
둘째, 병원 감독기관에서는 병원 평가와 관리에 있어 환자 부담의 적정성을 중요한 지표로 삼아, 환자에 대한 병원의 과도한 비용 청구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셋째, 의료 서비스의 공익적 성격을 강조하고, 수익과 환자 권리를 조화시키는 병원 경영 모델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본다.
환자는 단순한 병원의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 지불자가 아니다. 생명과 건강을 맡기는 신뢰의 주체이자, 의료 시스템의 정당한 수혜자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이를 망각하면, 사회적 신뢰는 깨지고 국민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이번 사례는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의료비 과다 청구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작지만 커다란 경고음이라는 생각이다.
정책과 제도가 아무리 발전해도, 환자 한 사람의 권리와 부담을 외면하면 의료는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은 의료비 과다 청구 관행을 근절하고, 환자 중심 의료 체계를 강화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의료는 존귀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일이며, 환자의 권리와 경제적 부담을 함께 고려하는 사회적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할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의료, 투명하고 정직한 비용 구조, 그리고 의료진과 병원이 함께하는 신뢰의 회복.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의료 개혁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만호 / 본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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