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지 불과 10년 남짓, 농촌진흥청이 또다시 수도권 회귀를 기도하고 있다. 

일부 핵심 연구 부서를 수원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확인되면서 지역사회가 격렬하게 들끓고 있다. 전북도와 정치권, 시민사회는 "지역 홀대이자 배신"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농진청은 2015년 전북혁신도시(완주·전주)로 내려왔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이었다. 전북도민은 농진청과 함께 농생명 산업의 중심지로 우뚝 설 미래를 그리며 아낌없는 환영을 보냈다. 

실제로 농진청은 이전 이후 매년 수천억 원대 연구비를 집행하고, 수백억 원 규모의 지역 구매와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최근 농진청은 국립식량과학원 산하 식생활영양과와 푸드테크소재과 등 식품·바이오 연구 핵심 부서를 수원으로 옮기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전북이 역점적으로 키워온 식품·바이오 산업의 중추를 송두리째 뽑아가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단순한 조직 이동이 아니라, 전북을 ‘농생명 수도’로 육성하겠다는 국가 비전 자체를 허무는 결정이다.

도의회와 시민사회가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임승식 도의원은 “불과 10년 만에 수도권으로 인력을 빼돌리려는 것은 공공기관 이전 취지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역시 “도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수도권만 살리겠다는 발상은 전북을 철저히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격렬히 규탄했다.

농진청은 "연구 효율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정"이라는 입장을 내세우지만, 이는 얄팍한 변명일 뿐이다. 국토교통부조차 ‘공공기관 2차 이전 방침에 역행한다’며 난색을 보였고, 인사혁신처 역시 직원 의견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졸속 추진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역사회의 우려는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정책적 타당성과 정당성을 결여한 ‘수도권 집착 행정’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에 이전하려는 기능이 전북 미래 산업 전략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전북은 식품클러스터와 연계해 푸드테크, 발효·가공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심장부를 다시 수원으로 옮기겠다는 것은 전북의 산업 기반을 허무는 행위나 다름없다. 이는 도민의 희생을 밑바탕 삼아 수도권만 살찌우겠다는 중앙의 오만이자 횡포다.

논란이 확산되자 농진청은 “재검토” 입장을 내놓았지만, 이는 철회가 아닌 임시봉합에 불과하다. 도민은 더 이상 기만적인 말장난에 속지 않는다. ‘재검토’라는 모호한 표현은 언제든 또다시 수도권 이전을 시도할 수 있다는 불안만 키운다.

농촌진흥청은 농업 연구의 중심 기관이다. 그 무게만큼이나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도민은 농진청이 전북에 내려온 것을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균형발전과 동반성장의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그 약속을 파기하고 수도권만 바라본다면, 전북 홀대 논란은 일개 기관 문제가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사안으로 비화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지금이라도 수도권 이전 계획을 단호히 철회해야 한다. 전북과 함께 농생명 수도를 일궈가겠다는 분명한 의지와 행동으로 도민에게 답해야 한다. 

그것이 농업 연구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이며, 균형발전을 향한 국가적 책임이다. 수도권만 바라보며 지방을 홀대하는 오만과 배신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